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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박승용

2015년 3월 2일 at 4:4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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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수교수 칼럼] M일보의 무분별한 튜닝기사, 자동차 튜닝산업에 크게 장에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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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일보의 무분별한 튜닝기사, 자동차 튜닝산업에 크게 장에로 작용한다.

김 필 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

재작년 자동차 튜닝산업이 국내의 향후 먹거리로 선정되면서 창조경제의 일환이 되었으나 생각 이상으로 활성화되지는 못하고 있다. 워낙 약 40년간 불모지였고 제도적 법적 한계와 시장의 자생 능력도 거의 없어서 시간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하나하나 제대로 구축하면서 활성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지난 10여년간 유일하게 자동차 튜닝세미나 주최와 유일한 튜닝모터쇼였던 서울오토살롱의 조직위원장으로 외롭게 노력하면서 튜닝 활성화를 외친 필자로서는 감회가 새롭다고 할 수 있다. 어느 누구도 이 사실에 대해서는 누구도 토를 달지 못할 것이다. 이후 자동차 관련 부서인 산업통상자원부와 국토교통부 산하에 각각 튜닝 관련 협회가 만들어지면서 서로 간에 어느 정도의 불협화음이 발생하기도 하였고 역할분담에 대한 이견도 발생하였지만 모두가 잘 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필자는 판단하고 있다. 대부분의 정부 관련 부서에 자문하는 필자로서는 부서의 역할분담을 통하여 그 동안의 부실을 헤치고 우리의 먹거리를 확보하고 고용창출 등 다양한 미래의 먹거리 확보가 더욱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정부 산하 두 개의 협회가 존재하여 일선에서 혼동을 일으킨다는 언급도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실제로 두 협회는 충돌하는 사안은 없으며, 이미 상호 협의를 통하여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그 동안의 오해를 풀고 서로 간에 조심하고 언급을 자제하며, 한 목소리를 내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는 뜻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자동차튜닝산업협회를 맡고 있는 필자로서도 더 이상의 불필요한 분쟁은 의미가 없는 만큼 적극적인 협조를 넘어 통합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단발적인 이권에 휘둘리지 말고 큰 그림을 보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생각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작년 후반부터 두 협회 간에 통합을 위한 작업을 서두르고 있고 최근에는 양 협회장 간에 완전한 합의를 이끌어 두 정부 부서가 최종 조율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두 협회는 하나로 통합하여 양 부서에서 동시에 인정하는 형태이다. 조만간 공동 정관 등 통합을 위한 세부적인 논의를 위하여 T/F팀을 운영 예정하고 있다. 드디어 통합된 협회의 이름으로 빠른 변화와 발전을 이끌어 국내 자동차 튜닝산업을 활성화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이러한 형태는 다른 분야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훌륭한 사례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최근 이러한 흐름에 찬물을 끼얹는 사례가 발생하였다. 2월 16일자 M일보에 게재된 튜닝 기사 때문이다. 두 협회의 통합이 지지부진하고 특히 본 협회에 대한 비난 기사가 넘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하나도 맞지 않는 추측성 소문이나 주관적이고 편협된 내용을 기사로 만들어 혼란을 유발시키는 저급의 주간지급 기사라는 것이다. 개인의 신상문제는 물론 협회 조직의 문제점이라고 제시하면서 취재를 하였다고 언급하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기자가 기사를 해당 협회에 연락조차 하지 않은 일방성 기사이고 사주를 받은 것과 같은 확인되지 않은 저급의 기사라는 것이다. 신상에 대한 부분은 협회의 고유 권한이고 기업 종사 유무 등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는 사항이다. 구성원은 회장 이하 집행부의 고유 권한인 것은 물론이고 설사 튜닝 관련 업무를 유일하게 진행하여 온 필자를 제외한 누구도 구성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누구도 언급할 사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협회 설립과정에서의 언급은 이미 2년전 본 협회를 시기하는 모 인사의 발언으로 기사화되었고 필자가 짃접 해당 기자에게 확인 검증시키면서 삭제된 내용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는 법제처의 유권해석에서도 이미 검증되어 어느 누구도 언급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판단하건데 얼마나 불리하고 급하면 이러한 치사한 방법을 동원할까 안쓰럽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유사한 기사를 내세우 것은 통합에 대한 서로간의 노력에 반하는 세력이라고 단언하고 싶다. 실제로 이번 사안에서 국토교통부 산하 협회에서 통합에 대한 부정 세력이 있는 만큼 해당 협회에서는 확실한 발본색원을 통하여 문제점을 없애야 한다고 판단된다. 어떻게 하면 찬물을 끼얹어 양 협회를 존속시켜 이득을 취할까 하는 세력이라고 확신한다. 이권에 관련된 세력이라는 것이다. 특히 해당 기자는 누구의 사주를 받았는지 모르지만 확인도 하지 않고, 이미 이전에 사용하던 거짓 내용을 다시 기사화한 부분은 기자로서의 기본 윤리를 저버렸다고 판단된다. 특히 반대 세력의 일방적인 내용만을 기사화하여 상대적 우위를 인위적으로 주관적으로 내세운 부분은, 모두를 저버린 자격 상실이라고 확신한다. 해당 신문사도 항상 편집 내용을 확인하여 사실에 기반을 둔 것인지 필수적으로 확인하여야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음을 숙지시키고 싶다.

해당 정부의 양 부서에서 함께 한 해명기사로 허위임이 판명되었지만 이제는 잘못된 내용에 대한 해당신문사는 물론 해당 기자의 정정 기사와 사과 기사도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허가를 내준 산업통상자원부는 물론이고 필자가 협회장으로 있는 본 협회에 대한 모독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기자는 사실에 근거하여 기사를 작성하고 게재하며, 결과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는 것이다. 해당 기자는 자숙하길 바란다. 경우에 따라서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단발성 문제로 양 협회의 통합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며, 국토교통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두 부서의 더욱 단결된 노력을 촉구한다.

Written by 박승용

2015년 2월 22일 at 7:36 오후

자동차에 게시됨

2015 우리나라 자동차산업 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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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레가 드디어 정월초하루입니다.
서울에 다녀오던 버스 안에서 초등학교 4학년 정도의 남자아이가 “아저씨”를 몇 차례 외치기에 모두 돌아보니 그 아이는 저를 보고 있었습니다. 저와 눈이 마주치자, “아저씨 여기 저기 그리구 조기 자리 비었는데 왜 안 앉으세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고마워” 하고 아이에게 답례를 하고 그 아이 옆자리 엄마를 보았는데 조금 지나니 그 엄마인 줄 알았던 여자분과 아이는 남남이었고 아이가 말을 붙여 다정하게 얘기를 나눈 것이었습니다. 아이의 붙임성과 배려와 마음씨가 고와서 웃으며 여행했습니다.
세계자동차산업은 전기자동차와 무인자동차(채영석국장님은 자율주행자동차라고 칭하시고)가 본격적인 궤도를 그립니다. 우리나라도 따라가고 있습니다만 조금 늦거나 답보하고 있습니다. 개인적 견해로는 전기자동차와 무인자동차를 담당하는 산학관네트워크가 불안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관계당사자들 모두 자신의 업에 적합한 자리를 맡고 최대한 협조를 끌어올려야만 하겠습니다. 아직은 협조와 양보와 배려가 조금만 더 발휘될 시기입니다.

Written by 박승용

2015년 2월 17일 at 9:08 오후

생각들에 게시됨

天眞은 守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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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아시는 한 기업가는 “행동하기 전에 늘 사심私心은 없는지 돌아보라” 고 말했습니다. 비단 비즈니스에서만 적용되겠습니까? 사업과 장사 뿐만 아니라 사소한 약속과 일정에도 이를 적용할 수 있고 되도록 적용해야겠습니다. 이런 마음을 따라하지 못하는 사람을 어찌 상인商人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백규 왈, ‘여상의 정책과 손자의 병법과 상앙의 법을 다루듯 상업을 해야한다. 세상 사람이 장사의 법을 논할 때 백규를 시조로 치는 게 그는 실행하고 옮겨서다.’
노자 왈, 大直若屈 大巧若拙 大辨若訥.
노자 45 장에 대한 송영복선생의 해설은 아래와 같다.

서툰 글씨가 명필입니다

大成若缺 其用不弊
大盈若沖 其用不窮
大直若屈 大巧若拙 大辯若訥
靜勝躁 寒勝熱 淸靜爲天下正
―제45장

가장 완전한 것은 마치 이지러진 것 같다. 그래서 사용하더라도 해지지 않는다.

가득 찬 것은 마치 비어 있는 듯하다. 그래서 퍼내더라도 다함이 없다.

가장 곧은 것은 마치 굽은 듯하고, 가장 뛰어난 기교는 마치 서툰 듯하며, 가장 잘하는 말은 마치 더듬는 듯하다.

고요함은 조급함을 이기고, 추위는 더위를 이기는 법이다. 맑고 고요함이 천하의 올바름이다.

이 장의 핵심적인 개념은 ‘대’大입니다. 대성大成·대영大盈·대직大直·대교大巧·대변大辯에서 알 수 있듯이 대는 최고의 개념입니다. 최고 수준, 최고 형태를 의미합니다. 성成·영盈·직直·교巧·변辯의 최고 형태는 그것의 반대물로 전화하고 있습니다. 곧 결缺·충沖·굴屈·졸拙·눌訥이 그것입니다. 변증법적 구조입니다. 질적 전환에 대한 담론입니다. 노자는 이러한 변증법적 논리를 통하여 사물에 대한 열린 관점을 제시합니다. 상투적이고 획일적인 형식을 뛰어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위를 배격하고 무위를 주장하는 노자의 당연한 논리입니다. 결론적으로 대大의 기준, 즉 최고最高의 기준은 ‘자연’입니다. 자연스러움이 최고의 형식이 되고 있습니다. 인위적인 형식에 대해서는 원초적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노자입니다.

‘대성약결’大成若缺과 ‘대영약충’大盈若沖은 같은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겉으로는 별로 없는 듯이 차리고 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헙수룩하게 차려입어도 개의치 않지요. 많이 아는 사람도 겉으로는 어리석게 보이기도 하지요. 의상의 경우에 대성大成의 경지, 즉 최고의 완성도는 잘 모르기는 하지만 아마 정장 차림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우 자유롭고 헐렁한 코디네이션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왕필은 “사물에 맞춰서 채우되 아끼거나 자랑하지 않으므로 비어 있는 듯하다”고 주를 달아놓았습니다. 『장자』莊子에서도 언급되고 있듯이 부어도 차지 않고 떠내어도 다하지 않는다(注焉而不滿 酌焉而不竭)는 것은 어떤 획일적 형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정해진 형식이 없는 경우에는 닳거나(弊), 다함(窮)이 있을 수 없는 것이지요.

‘대직약굴’大直若屈에 대해서 왕필은 “곧음이란 한 가지가 아니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대직大直을 대절大節 즉 비타협적인 절개와 지조의 의미로 이해하는 경우에도 그렇습니다. 가장 중요한 원칙 문제에 있어서 타협하지 않는 사람은 사소한 일에 있어서는 구태여 고집을 부리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원칙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작은 일에 매달리고 그 곧음을 겉으로 드러내게 마련이지요. 어떤 분야든 최고 단계는 특정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으며, 좁은 틀을 시원하게 벗어나 있게 마련이지요.

‘대교약졸’大巧若拙에 대해서는 내가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아마 서예에서만큼 졸拙이 높이 평가되는 분야도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서예에 있어서 최고의 경지는 교巧가 아니라 졸입니다. 추사가 세상을 떠나기 3일 전에 쓴 봉은사의 현판 ‘판전’板殿이란 글씨는 그 서툴고 어수룩한 필체로 하여 최고의 경지로 치는 것이지요. 서예에 있어서 최고의 경지는 환동還童이라고 합니다. 어린이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일체의 교와 형식을 뛰어넘는 것이지요. 법法까지도 미련 없이 버리는 경지입니다.

‘대변약눌’大辯若訥은 “최고의 웅변은 더듬는 듯하다”는 뜻입니다. 언言은 항상 부족한 그릇입니다. 언어로는 그 뜻을 온전히 담아내기가 어렵습니다. 명가명名可名 비상명非常名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언이 부족한 표현 수단인 것은 이해가 가지만 어째서 눌변訥辯이 대변大辯일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으리라고 짐작합니다만, 예를 들어 ‘맷돌’이라는 단어를 놓고 생각해봅시다. 여러분은 맷돌이란 단어에서 무엇을 연상합니까? 아니 어디에 있는 맷돌을 머리에 떠올리고 있습니까? 생활사 박물관이나 청진동 빈대떡집에 있는 맷돌을 연상하는 것이 고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곳에서밖에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외갓집 장독대 옆에 있던 맷돌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언어는 소통의 수단입니다. 소통은 화자와 청자 간에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따라서 맷돌이라는 단어는 그 단어가 연상시키는 경험 세계의 소통 없이는 결코 전달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화자의 연상 세계와 청자의 그것이 서로 어긋나는 경우 정확한 의미의 소통은 차질을 빚게 됩니다.

말을 더듬고 느리게 이야기하는 경우에는 이러한 불일치를 조정할 시간적 여유가 생기는 것이지요. 화자가 청산유수로 이야기를 전개해가면 청자가 따라오지 못하게 되지요. 느리게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언어란 불충분한 표현 수단이라는 점을 잊지 않는 것이지요. 언어는 무엇을 지시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가 지시하는 대상을 찾아내고 그 대상에 대한 청자와 화자의 합의가 도출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될 수 있으면 언어를 적게, 그리고 느리게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지요.

언젠가 라이브 콘서트에서 느낀 것입니다. 노래 중간 중간에 가수가 엮어 나가는 이야기가 청중을 사로잡고 있었어요. 가수가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이 압권이었습니다. 배경음악을 깔고 낮은 조명 속에서 이따금씩 말을 더듬는 것이었어요. 적당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서 그것을 찾느라고 가끔씩 말이 끊기는 것이었어요. 말이 끊길 때마다, 나도 그랬지만, 청중들이 그 가수를 걱정해서 각자가 적당한 단어 한 개씩을 머릿속으로 찾아보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뜸을 들이던 가수가 찾아낸 단어가 우리가 생각해낸 것보다 한 수 위였어요. 그 순간 청중은 언어 감각에 있어서 가수보다 한 수 아래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었어요. 가수에게 패배하는 것이지요. 처음에는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해서 더듬는다고 생각했습니다만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말더듬음은 청중을 지배해가는 방식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대변大辯이었습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눌변訥辯이 청자의 연상 세계를 확장해준다는 것을 이야기하려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고요함이 조급함을 이기고 추위가 더위를 이긴다는 것, 그리고 고요한 것이 천하의 올바름이라는 것은 역시 노자 사상의 당연한 진술입니다. 왕필본에는 ‘조승한躁勝寒 정승열靜勝熱’로 되어 있습니다만 전체적인 의미 맥락을 존중하여 최근에는 많은 학자들이 예시문처럼 ‘정승조靜勝躁 한승열寒勝熱’로 바꾸어 읽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후자를 따랐습니다. 천하의 올바름이란 바로 자연의 질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고요함이란 작위가 배제된 상태를 의미함은 물론입니다.

Written by 박승용

2015년 2월 17일 at 2:5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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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연 경상이재18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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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태함을 경계하고 근면해야 한다. 나태함은 만사를 그르친다.
  2. 가격은 모호하지 않고 분명히 드러내야 한다. 모호함은 다툼을 만든다.
  3. 사치를 멀리하고 근검해야 한다. 사치는 필연적으로 재산을 고갈시킨다.
  4. 외상거래를 남용하지 않고 사람을 가려야 한다. 잦은 외상거래는 본전을 거두지 못하게 한다.
  5. 물건은 함부로 들이지 말고 직접 눈으로 검사해야 한다. 함부로 들이면 품질과 가격에서 손해를 입는다.
  6. 출납기록은 정확히 해야 한다. 소홀하면 착오가 많아진다.
  7. 사람을 쓰는 일은 올곧아야 한다. 제대로 하지 않으면 일을 시키고 부리기가 어렵다.
  8. 물품은 질에 따라 구분해 놓아야 한다. 한데 섞어 놓으면 소모가 커진다.
  9. 물품은 자리를 정해 잘 정돈해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검수하기가 어렵다.
  10. 기한은 정확하게 지켜야 한다. 대충 하면 신용을 잃기 쉽다.
  11. 매매는 신속해야 한다. 지연하면 때를 놓친다.
  12. 금전관리는 명확히 해야 한다. 불분명하면 폐단의 근원이 된다.
  13. 물품장부는 철저하게 살펴야 한다. 소홀하면 물류가 적체된다.
  14. 교역상대를 대함에 있어서는 겸허해야 한다. 거만하게 대하면 거래가 줄어든다.
  15. 항상 마음을 안정되게 지녀야 한다. 경거망동하면 실수가 많아진다.
  16. 스스로 책임을 다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미루면 도리어 손해가 커진다.
  17. 일처리는 꼼꼼하게 해야 한다. 대강 처리하면 조잡한 결과를 빚게 된다.
  18. 말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 경솔하면 일을 그르친다.

Written by 박승용

2015년 1월 26일 at 8:5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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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김씨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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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김씨냐가 언제적 말씀이신가요 하는 아들넘의 개화기 유학생같은 발언에 나는 잠시 묵묵ㅎ다가 ‘어디 김씨냐’에 관하여 짧고 명확하게 해두어야겠다고 말하곤 이렇게 정리하였다.
「본관이 어디인가. OO권씨입니다. 자네 고향은 어디인가. OO마을권씨입니다.」
같은 권씨든 김씨일지라도 그 집안 몇 대가 자란 마을을 다시 묻는 이유는 본관이 같아도 그 중에서도 어떤 사람들의 후손인지를 묻는 거고 ‘종자’를 알아보는 거다. 여기에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판 난다’는 철학이 있다.
그러나 인간은 만류의 영장이라서, 콩으로 나서 팥으로 자라기도 하고, 팥으로 나서 콩으로 자라기도 한다. 교육과 환경과 토양과 주변 사람들이 주로 영향을 주지만 제일 주요한 요인은 마음이다. 상相이라는 것은 콩으로 나서 팥으로 자라면 팥의 상이고 팥으로 나서 콩으로 자라면 콩의 상이 되는 거다. 지금의 상 또한 영원하지 않다.
‘어디 김씨냐’ 하는 건 씨를 보는 것이고 상은 마음을 보는 것이다. 다른 중요한 거 차치하고 이 두 개만 알아도 한 사람의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덜 틀린 향배를 예측하는 거다.

Written by 박승용

2015년 1월 20일 at 11:1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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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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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를 하기 위해선 가격을 정확히 가격해야겠다. 진나라 계연의 경상이재18책인가? 그 중 두 번째는 ‘가격은 모호하지 않게 분명히 드러내라. 모호함은 다툼을 만든다’고, 2천 년의 시공을 바꿔 일본의 이나모리 가즈오의 최근 경영12가지원칙인가? 그 중 여섯 번째도 ‘가격 결정이 곧 경영임을 명심하라. 가격 결정이 가장 중요하다. 고객도 만족하고 자신에게도 이익이 되는 한 지점을 찾으라’다.

Written by 박승용

2015년 1월 19일 at 11:1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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