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慕竹旨郞歌 모죽지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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慕竹旨郞歌 모죽지랑가

 

作者: 得烏

年代: 제32대 孝昭王 때(692-702)

出典: 三國遺事 卷二 竹旨郞

 

孝昭王代 竹旨郞 효소왕대 죽지랑

[죽만랑의 낭도 득오가 모량리 익선의 부역에 동원되다]

제32대 효소왕 (孝昭王) 때 죽만랑 (竹曼郞)의 낭도 중에 득오 (得烏) 또는 곡(谷) 급간(級干)이 있었다. 풍류황권(風流黃卷)에 이름을 올려놓고 날마다 출근하였다. 열흘 동안 보이지 않기에 낭이 그의 어머니를 불러 아들이 있는 곳을 물었다. 어머니가 말하기를, “당전(幢典)인 모량 (牟梁)의 익선 (益宣) 아간(阿干)이 내 아들을 부산성(富山城)의 창직(倉直)으로 뽑아갔는데, 빨리 가느라고 미처 낭에게 말씀 드릴 겨를도 없었습니다” 라고 하였다. 낭이 말하기를, “당신 아들이 만약 사사로운 일로 그곳에 갔다면 찾아볼 필요가 없지만, 이제 공사로 갔다니 마땅히 가서 대접해야겠소” 라고 하고, 이에 설병(舌餅) 한 합과 술 한 병을 가지고 좌인(左人)을 거느리고 갔다. 낭의 무리 1백 37명도 위의를 갖추고 따라갔다.

[익선의 어리석음으로 모량리민들이 벼슬에서 쫓겨나다]

부산성에 이르러 문지기(閽人) 에게 득오실 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문지기는 답하기를, “지금 익선의 밭에서 예에 따라 부역하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낭은 밭으로 가서 가져간 술과 떡을 대접하였다. 익선에게 휴가를 청하니 함께 돌아가려고 했으나 익선은 굳이 거부하고 허락하지 않았다. 그때 사리(使吏) 간진 (侃珍)이 추화군 (推火郡) 능절(能節)의 조 30석을 거두어 성 안으로 수송하고 있었는데, 죽만랑이 선비를 소중히 여기는 풍모를 아름답게 보고, 익선의 어리석은 고집과 융통성 없음을 비루하게 여겨, 가지고 가던 조 30석을 익선에게 주고 도움을 청하였다. 그래도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또 진절 (珍節) 사지(舍知)의 말안장을 주니 그때야 허락하였다.

조정의 화주(花主)가 이를 듣고 사자를 보내 익선을 잡아다가 그 더러움을 씻기려고 하니 익선이 도망하여 숨었으므로 그 맏아들을 잡아갔다. 그때는 중동(仲冬)의 몹시 추운 날이였으므로 성 안의 못에서 목욕을 시켰더니 이내 얼어 죽었다. 대왕이 이를 듣고 칙령을 내려, 모량리 사람으로서 벼슬하는 자는 모두 쫒아내어 다시는 관서에 관계하지 못하게 하고, 승복(黑衣)을 입지 못하게 했으며, 만약 승려가 된 자라도 종고(鐘鼓)를 단 큰 절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왕은) 사(史)에게 명하여 간진의 자손을 올려 평정호손(枰定戶孫)으로 삼고 그를 표창하였다. 이때 원측법사 (圓測法師)는 해동 (海東)의 고승이었으나 모량리 사람이었기 때문에 승직을 주지 않았다.

[죽지랑의 신이한 탄생담]

이전에 술종공 (述宗公)이 삭주도독사(朔州都督使)가 되어 장차 임지로 가려 하는데, 이때 삼한에 병란이 있었으므로 기병 3천 명으로 그를 호송하였다. 일행이 죽지령 (竹旨嶺)에 이르렀을 때, 한 거사가 그 고개길을 닦고 있었다. 공은 이를 보고 찬탄하였고, 거사 또한 공의 위세가 성함을 존대하여 서로 마음에 감동되었다. 공이 주의 치소에 부임한 지 한 달이 되던 때 꿈에 거사가 방에 들어오는 것을 보았는데, 부인도 같은 꿈을 꾸었다. 더욱 놀라고 괴이히 여겨 이튿날 사람을 보내 그 거사의 안부를 물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거사가 죽은 지 며칠 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사자가 돌아와서 그 사실을 아뢰었는데, 그가 죽은 날이 꿈꾸던 바로 그날이었다. 공이 말하기를, “아마 거사가 우리 집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하였다. 다시 군사를 보내 고개 위 북쪽 봉우리에 장사지내고, 돌로 미륵불 한 구를 만들어 무덤 앞에 봉안하였다. 부인은 꿈을 꾼 날로부터 태기가 있더니 아이를 낳자 이름을 죽지 (竹旨)라고 하였다. 장성하여 벼슬길에 나아가 부수(副帥)가 되어 유신공과 함께 삼한을 통일하였고, 진덕(眞德)·태종(太宗)·문무(文武)·신문(神文)의 4대에 걸쳐 재상이 되어 나라를 안정시켰다.

처음에 득오 곡이 낭을 사모하여 노래를 지었으니 이렇다.

去隱春皆理米 간 봄 그리매

毛冬居叱沙哭屋尸以憂音 모든 것사 설이 시름하는데,

阿冬音乃叱好支賜烏隱 아름아움 나타내신

皃史年數就音墮支行齊 얼굴이 주름살을 지니려 하옵네다.

目煙廻於尸七史伊依 눈 돌이킬 사이에나마

逢烏支惡知作乎下是 만나뵙도록 (기회를) 지으리이다.

郞也慕理尸心未 行乎尸道尸 낭(郞)이여, 그릴 마음의 녀올 길이

蓬次叱巷中宿尸夜音有叱下是 다북쑥 우거진 마을에 잘 밤이 있으리이까.

Written by 박승용

2014년 11월 25일 at 1:1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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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양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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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공다소량피래처(計功多少量彼來處)
촌기덕행전결응공(村己德行全缺應供)
방심이과탐등위종(防心離過貪等爲宗)
정사양약위료형고(正思良藥爲療形枯) 
위성도업응수차식(爲成道業膺受此食)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
내 덕행으로는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Written by 박승용

2014년 11월 23일 at 11:3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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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와 주판 : 요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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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와 算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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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사와 에이치(1840 – 1931)

1927

충성당

노만수 2009 페이퍼로드

 

24 도덕을 논하면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가를 말해야만 한다면… 논어라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도덕의 논리’입니다… 그 안에 ‘주판의 논리’ 바로 ‘상업의 논리’가 있다는 걸 모른 것입니다.

25 미시마키 선생은… ‘도리와 이익’, 그러니까 ‘논어와 주판은 반드시 일치해야 한다‘는 관점을… 증명.

하나의 사물이 진보하려면 인간의 강렬한 욕망인 利殖을 충분하게 꾀하지 않으면 절대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26 財富를 증진시키는 근원… 仁義道德이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올바른 도리로 얻는 부가 아니면 그 부는 아릅답지도 않고 영원할 수도 없다.

스가와라 미치자네(845 – 903)가 ‘和魂漢才’를 부르짖은 것. 저는 늘 ‘士魂商才’를 제창했습니다.

일본혼에 기초해 반드시 漢士라고 하는 중국 사대부들의 문화와 학술을 배워, 재능과 학문적 소양을 길러야 한다는 게 화혼한재.

27 사람이 세상에 바로 서기 위해서 당연히 ‘사무라이정신 士魂’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단지 사혼만 있고 ‘상인재능 商才’이 없으면 경제적 자멸을 불러올 뿐이죠.

‘논어’만큼 士魂을 배양하는 데 좋은 책은 없다… 그럼 ‘商才’는 어떻게 기를까?

상인의 재능도 ‘논어’를 통해 충분히 배양할 수 있습니다.

얼핏… 도덕적인 책과 상인의 재능은 관계가 없는 듯… ‘商才’라고 하는 것이 원래 도덕을 뿌리로 두고 있기 마련입니다.

28 200 년이 넘는 세월을 백성들이 安眠高枕할 수 있도록 하는 시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神君遺訓과 논어는 매우 닮았다.

31 공자의 정신을 잘 살펴야… 眼光紙背撤의 정신에 바탕을 두는 안목 없으면 피상적 이해의 우려가 있다.

32 天命에 따라 살 수 밖에. 너무나 자명한 이치. 獲罪於天(하늘에 죄를 짓다)는 공자의 말씀은… 무리한 흉내를 내거나 부자연스런 행동을 한다는 뜻.

반드시 나쁜 결과를 얻기 마련입니다.

스스로 응보를 부를 수 밖에 없는 노릇… 스스로 부른 禍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無所禱也(빌 곳마저 없다)는 의미.

34 사토 이치사이(1772 – 1859) 선생은 言志錄에서 ‘사람을 처음 만날 때 살핀 관찰은 거의가 틀리지 않다.’

35 孟子께서는 ‘사람을 살피는 데는 눈동자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눈동자는 그 사람의 악을 감추지 못한다. 마음이 바르면 눈동자가 맑고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눈동자가 흐리다.

36 孔子의 가르침인데요, 보고 視, 살피고 觀, 관찰하는 察.

우선 겉으로 드러나는 사람의 행동거지를 ‘보고 視’, 선악과 시시비비를 판단하고 그의 행위동기를 ‘살핀 觀’ 뒤 그 사람은 무엇을 한 뒤 안심하고 무엇에 만족하며 사는지 등을 ‘관찰 察’하면, 그 사람의 진실한 인품을 명징하게 알 수 있습니다.

37 행위, 동기, 목표 이 세 가지가 모두 바르고 단정하지 못하면 초지일관 올바른 사람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논어’는 장사꾼들이 배움을 얻으면 절대로 안되는 책이란 말인가?

‘논어’로부터 상업활동의 도리를 깨우칠 수 있다면 저의 재능과 포부를 크게 펼 수 있는 거라는 결론에 이르렀지요.

40 ‘금전을 취급하는 게 왜 비천하단 말인가. 자네처럼 금전을 천하게 여기면 나라를 부강하게 할 수가 없네. 나라가 가난하면 나라가 또 어떻게 제대로 설 수 있겠나.’

41 논어 泰伯편 13장, 나라에 올바른 도가 행해지는데도 가난하고 비천하다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고, 나라에 올바른 도가 없는데도 부유하고 고귀하다면 이 또한 부끄러운 일이다.

저는 ‘논어’의 가르침은 드넓은 세상의 뭇사람들에게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단도직입적으로 ‘서민의 책’이라고 단언.

42 논어야말로 ‘실용’과 ‘통속’을 함께 갖추어 알기가 쉬운 고전인 것이지요. 용인술은 매우 어렵다고 생각하지요.

43 일본 역사를 통틀어 교모하게 자신의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자신의 세력을 용의주도하면서도 일사불란하게 잘도 확장한 권모가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견줄 만한 사람은 눈에 띄지 않습니다.

44 이렇게 다이묘 大名의 손과 발을 묶어 놓았기에 도쿠가와 막부는 300 년 동안이나 패업을 교묘하게 지켜 낼 수 있었던 것이죠.

45 그런데 저는 용인술에 관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지혜를 배우고 싶어 끊임없이 고심하고 있지만 그 목적은 완전히 다릅니다… 제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겠다든지, 사심을 풀어헤치겠다는 생각보다는… ‘적재적소에 인재를 쓰고 싶다’는 소박한 마음.

그래서 오만하게 굴지도 말고,

46 남을 얕보지도 말며, 서로 용서하고 참고 양보하며, 털끝만큼도 서로 등지어 떨어지지 말자는 게 저의 신조입니다.

‘덕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 德不孤 必有隣’

저 개인적으로 사람들끼리의 경쟁은 절대적으로 배척해야만 하는 게 아니라 도리어 매우 필요한 그 무엇이라고 생각합니다.

맹자 告子 下편, ‘적국의 침입이 없으면 나라가 망하기 쉽다. ‘無敵國外患者 國恒亡‘

47 한 개인도 마찬가지.

사방의 경쟁자와 싸워서 반드시 이겨 나가겠다는 투지가 없으면 그 사람은 절대로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50 제가 역경에 처했던 당시의 체험에서, 그리고 도리에 맞는 상식선상에서 생각해보자면, 그 어떤 사람일지라도 자연적인 역경에 빠졌을 경우에는 우선 이것이 나 자신의 본분, 즉 운명이라고 여기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각오를 단단히 하는 게 유일한 대책인 듯합니다.

51 이렇게 知足하면 힘들지만 초조하지 않다. 天命으로 받아들이면 마음은 平定心을 유지할 수 있다.

인위적인 역경은 대다수가 자신이 조장한 것이기에 우선 자신을 반성하고 잘못을 철저하게 고치면서 남의 탓을 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공자 왈, ‘다른 사람이 나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말고, 네가 다른 사람의 가치를 제대로 알고 있는가를 걱정하라.’

52 저는 처세의 방침으로 지금까지는 ‘忠恕’라는 일관된 사상과 원칙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53 修身. 唯酒無量 不及亂(주량은 정하지 않았지만 주정을 부리는 일이라곤 없었다)

54 자신을 너무 과신해 분에 넘치는 희망을 품는 경향… 단지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 알지, 본분을 지키는 걸 몰라 무턱대고 실패를 향해 맹진.

55 본분을 지키되 진취적 기상을 잊어버리라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破釜浸舟(항우가 秦 군사와 싸울 때 강 건넌 후 밥솥을 부수고 배를 침몰시켜 다시 돌아가지 않을 각오함). 희노애락을 조절. 저는 誠心誠意主義다.

57 저는 우선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도리에 맞는지를 고려합니다. 그리고는 도리에 맞게 일을 처리하는 방안이 국가와 사회에 도움이 되는지를 고려합니다. 그런 연후에 이렇게 하면 나에게 좋은가, 좋지 않은가를 따집니다.

58 사회에서 무조건 작은 일과 큰일을 구분하거나 서로의 경중을 따지는 것은 제가 보기에 필경 군자의 도가 아닌 듯합니다. 하여 모든 일은 대소를 나누지 말고 늘 같은 태도로 고려하고 처리해야만 합니다.

59 得意의 대일수록 우쭐해 하지 말고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똑같이 사리분별을 주의 깊게 기울이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도쿠가와 미쓰쿠니의 壁書 중에 ‘작은 일을 모두 통달하면 큰일이 닥쳐도 놀라지 않는다’라는 글귀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했던 말을 한 마디로 함축하는 명언입니다.

67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장 크나큰 단점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수신제가를 이루지 못한 것과 계략은 있다손 치더라도 치국평천하의 경략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장점은 그의 노력과 용기 그리고 기지일 것입니다… 가장 큰 원동력은 바로 그의 공부였습니다.

68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젓가락질.

‘간파쿠’라는 山海珍味를 오다 노부다가가 입에 넣어 준 것은 절대 아니라, 자신의 젓가락을 손수 들어 간파쿠라는 옹록차게 맛난 음식을 집어 먹은 것일 뿐입니다.

72 도쿠가와 미쓰쿠니, ‘작은 일에 통달하면 큰일이 닥쳐도 놀라지 않는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공자, ‘절제 있는 생활을 하면서 잘못되는 경우는 없다.’

73 무턱대고 자신의 기량과 어울리지 않는 영역에 매진… 진정한 立志라고 할 수 없습니다.

74 예로 어떤 사람이 하나의 일로 사회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이 일을 하나의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그를 자극했지요. 자신감에 넘쳐났습니다. 바로 이때의 희망이 ‘작은 뜻’입니다.

그 작은 뜻이 애초에 서운 큰뜻의 범위를 벗어나면 안 된다.

작은 뜻은 성질상 늘 변하기 마련. 작은 뜻이 근본적인 큰뜻을 동요시키면 절대 안 돼. 둘은 조화롭게 일치해야.

86 일반적인 人情을 환히 궤뚫고 통속적인 事理를 잘 이해하며 적절하게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상식입니다.

88 朱熹는 ‘마음이 비어 맑고 환하고 虛靈不昧.’ ‘조용하고 고요하게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寂然不動’고 했습니다. 속임수만을 늘릴 뿐이라고 생각하며 인의충효를 주장한 말입니다. 그리하여 주희는 공맹의 가르침을 편협하게 하고 세상사람들이 유교의 큰 정신을 오해하게 만들었습니다.

지혜가 많은 사람은 그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 일의 원인과 결과 그리고 돌아가는 이치를 명명백백하게 알고 있기에 투철하게 일을 처리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람이 情愛가 결핍하면 결국에는 사리를 악용해 자기본위대로 일을 처리하기 쉽습니다… 이러한 불균형을 조화롭게 하는 게 바로 情입니다… 가장 큰 단점은 쉽게 격정에 휩싸이게 한다는 것.

89 충동적인 정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강한 의지가 필요합니다. 의지는 정신작용의 근원입니다.

강한 의지에 총명한 지혜 게다가 정애가 깊어 智情意 이 세 가지요소가 가장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 운용되는 것, 이것이야말로 곧바로 완전무결한 상식입니다.

91 마쓰오 마쇼(1644 – 1694 에도시대 시인), ‘가을바람처럼 차가운 말은 입술도 서늘하네.’

입은 재앙의 문(위 싯구처럼)이기도 하지만 복의 문이기도 합니다.

92 저의 입신과 동시에 남들을 돕고 사회발전에 공헌한다.

99 사회의 실제 상황에 근거하더라도 정치계든 실업계든 심오한 학식보다는 오히려 건전한 상식을 갖춘 사람들이 일을 주도하는 게 더 낫습니다.

100 과연 天道란 옳은가?

‘친절함이 도리어 불친절이 되어 버린’ 이야기를 기억하시나요? 병아리가 부화하면서 달걀 껍질을 쪼개고 나오는 것을 몹시도 힘들어했습니다. 한 어린아이가 그걸 보고 병아리가 불쌍해 달걀 껍질을 벗겨 주었지요. 그런데 그만 병아리가 죽고 말았습니다.

101 고자 왈, ‘자신의 마음에서 편안하지 못한 것이 있더라도 氣에서 그것을 해결하려고 하지 말라는 말은 옳지만, 남의 말에서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더라도 자신의 마음에서 그것을 이해하려고 고민하지 말라는 말은 옳지 않다. 의지는 기를 통솔하는 것이고 기는 몸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다. 의지가 먼저 있고 기는 그것을 따라간다. 그러므로 의지를 국게 지니며 기를 함부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

102 비록 한 사람의 행위 동기가 여하튼 선량하다손 치더라도, 게다가 忠恕의 道에

103 부합한다손 치더라도 그 행위의 결과가 그것에 부합하지 못한다면 어찌 세상 사람들의 믿음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여튼 간에 마음보다는 행위가 민첩하고 선한 결과를 얻어 낸 사람이 사람들의 신뢰를 받기가 용이합니다.

104 ‘만약에 이러한 것이 이른바 天道라면 이것은 과연 옳은가 그른가’ 이게 어찌된 노릇인가요? 무엇이 진짜 재능이고 참된 앎인가.

105 ‘사람은 자신의 경우를 잘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109 공자는 예란 경건히 삼가 조심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알고 설사 상식으로 大廟의 예를 이미 알고 있었을지라도 다시 묻고 물으며 정성을 다했던 것이지요… 자신의 경우와 지위를 잘 알고 처세의 도리를 겸손하면서도 정확하게 지켰습니다.

동기와 결과

111 P.프리드리히(독일 철학, 윤리학자. 1846 – 1908)의 윤리설은 동기와 결과 즉 마음과 행동을 세세하게 헤아린 후에야 선악을 정할 수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프리드리히가 말한 것이 과연 진리라고 생각하시나요?

마음이 선량하면 행위는 반드시 선량하다는 뮤어헤드(영국 윤리학자. 1855 – 1940)의 학설보다는 오히려 본래의 동기와 나중에 드러난 결과를 비교한 연후에 선악을 판단하는 게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112 인생은 땀 흘리기 나름

저는 올해(大正 2 년, 1913 년) 일흔네 살이 됐습니다.

114 요약컨대 모든 일은 평상시에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판가름이 나기 마련입니다.

말인즉슨, 저는 모든 사람들이 평상시에 학문을 쌓으려고 노력하면서 평상시에

115 모든 사물과 시세에 대한 지혜를 터득하려고 스스로 애써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마음보는 큰 코 다친다.

118 때문에 의지를 단련하기에 대단히 중요한 대전제가 필요한데요. 그것은 바로 자신의 의지가 상식적으로 옳은가를 고려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의지를 단련하는 것은 꼭 상식과 어울려야만 합니다. 상식의 배양은 다른 데서 자세히 말씀… 상식의 근본 출발은 여전히 孝悌忠信입니다.

119 정당한 부를 올바르게 쓰라

120 정당한 부는 부끄럽지 않다.

유학자들이 지금까지 공자의 학설에 대해 가장 크게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은 바로 ‘부귀관념’과 ‘화식사상’입니다. 그들이 ‘논어’를 해석한 바에 따르면 仁義王道와 貨殖富貴는 서로 물과 불처럼 절대 어울리지 못하는 상극입니다. 때문에 그들은 공자가 ‘부귀한 자는 인의왕도의 마음이 없기 대문에 어진 사람이 되고 싶거들랑 반드시 부귀의 念을 버려라’고 말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논어 20편을 샅샅이 뒤져 보아도 그런 뜻의 구절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지요. 아니, 오히려 부귀와 화식에 대해 그러한 논란을 절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공자의 반쪽’ 만을 세상에 전하고 말았지요.

122 정당한 방법으로 부를 얻는 게 아니라면 언제까지라도 부에 연연하지 않겠다.

간악한 수단으로 부를 쌓는 것보다 오히려 安貧樂道의 길을 걷는 게 더 낫다.

123 그래서 저는 正道에 부합하는 富貴와 功名은 적극적으로 얻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공자님도 그렇게 생각을 하셨고요.

124 돈만큼 부처님도 반짝인다.

125 저는 이 문제에 대해 늘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말이 바로 쇼겐 왕태후의 御歌 중에 다음과 같은 노래 한 수입니다.

‘마음이 착한 이에게 황금은 보물이요, 마음이 악한 이에게 황금은 재앙을 불러온다네.’

126 이런 말들이 돈을 경시하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공자도 결코 가난을 장려하지 않았습니다.

‘천하에 도가 있다면 드러내고 도가 업다면 숨어라. 나라에 올바른 도가 행해지는데도 가난하고 비천하다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고 나라에 올바른 도가 없는데 부유하고 고귀하다면 이 역시 부끄러운 일이다.’

127 正道로써 얻은 부가 아니라면 거기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돈은 죄가 없다.

128 지금에 비해 사회가 비교적 단순했던 옛날에도 ‘恒産이 없으면 恒心을 지키기 어렵다’는 경구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항산은 ‘고정적인 생업’이고 항심은 ‘흔들림없는 도덕적인 마음’을 뜻하빈다.

금전은 귀하고 비천한 것.

귀한 점은, 금전은 노력의 대가이기 때문에 귀중합니다. ‘자신이 땀을 흘린 만큼 번다’는 약정에 따라 그에 합당한 가치를 금전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게 자본주의 사회. ‘금전은 통화가 아니라 광범위한 일체 재부를 잴 수 있는 금전, 재산의 대명사’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29 맹자에서 陽虎의 ‘致富를 하면 어질지 못하고 어짊을 행하면 치부를 하지 못한다’

이것은 전국시대 일반적 처세술이었습니다. 동양의 풍습은 일반적으로 금전을 매우 비속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군자는 금전을 가까이 하면 안 되고 소인은 당연히 금전을 경계하고 두려워 해야만 했습니다. 극단적으로 금전을 천시하는 풍토.

중요한 것은 ‘논어’와 ‘주판’을 반드시 일치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130 경제와 도덕을 일치시키기 위해서는 ‘논어와 주판’을 조화롭게 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해 왔습니다.

131 황금만능주의를 나무라고 싶었던 아리스토텔레스와 동시대 사람이었던 공자도 ‘자신의 이익만을 탐하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원망을 많이 듣게 된다.’

132 仁義道德에 바탕을 둔 진정한 재부의 도

133 정말로 돈을 버는 것이 인의도덕을 기초로 하지 않으면 결코 영원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134 게다가 재앙도 끊이지 않아 결국 원나라에게 멸망… 바로 인의도덕에만 지나치게 몰입한 송나라의 비참한 최후…

송은 공리공론의 인의도덕에만 빠져 망국을 자초… 원나라는 그 반대로 개인들이 이익만능주의에 빠져 나라와 사회를 위험에 빠뜨렸습니다.

136 한 집안이 어질면 나라가 굴기한다.

138 ‘대학’에 ‘한 집안이 어질면 한 나라가 어질어 굴기하고, 한 사람이 탐욕스러우면 한 나라가 어지러워진다.’

139 義利合一의 신념을 세우길!

141 仁과 富를 마치 물과 불의 관계처럼 완전히 서로 다른 것으로 여겨…

하지만 이런 생각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온전히 틀린 말입니다.

공맹의 가르침은 그게 아니다. 철저하게 ‘義利合一’이라고 생각합니다.

141 송나라 주희(1130 – 1200)는 맹자 서설에서 이렇게 말한 바, ‘계책을 쓰고 술수를 써서 공적을 세운다 하더라도 이것은 다만 사사로운 사람의 탐욕일 뿐이니, 성현이 하시는 일과는 하늘과 땅만큼의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142 후세 閩洛학파가 날조한 망언.(朱熹는 복건성 출신. 閩(민)은 복건성 별칭. 程顥와 程이는 낙양인. 여기서 낙은 洛河.)

144 부자와 노블레스오블리주

중국 ‘周公三吐哺, 牬公三握髮 주공은 식사 때 손님이 찾아올 때마다 전혀 성가시게 여기지 않고 맞이하며 한고조 유방(패공)은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머리를 감는 걸 세 차례씩이나 멈췄다.

147 대부호들께서도 사회에 대한 그러니까 공공사업을 위한 도덕상의 의무감을 최대한 지켜주셨으면 합니다.

148 정승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자.

돈의 대표적 가치는 ‘귀중’하다는 것.

따라서 돈의 제 1 요건은 화폐의 실제 가치가 물품의 가치와 같아야 한다는 점.

돈은 나눌 수가 있기에 편리.

돈은 물건의 가치를 결정합니다.

150 돈은 낭비해서도 인색해서도 안됩니다. ‘잘 버는 만큼 좋은 데 잘 쓰는’ 사람이 됐으면 합니다.

151 본질을 꿰뚫는 눈을 길러라.

152 아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보다 즐기는 게 최고다.

153 요컨대 자신의 욕망과 이상을 보태어 일을 처리하는 것이야말로 ‘흥미’라고 부를 만한 것입니다.

154 흥미도 없고 열정도 없는 사업가는 단지 ‘비즈니스 목각인형’에 불과.

어떤 일을 하더라도 가능한 깊고도 두터운 흥미를 자신의 가슴 속 깊은 곳에 지닌다면… 최소한 자신의 이상과 욕망은 만족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155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시키지 말라.

157 도대체 이른바 문명이란 무엇인가요?

저는 공자가 仁과 恕에 대해 말씀한 게 그러한 원칙이라고 생각(국민 모두가 지켜야 할 원칙).

‘사회에 나가서는 큰 손님을 뵌 듯이 하고, 백성을 부릴 대는 큰 제사를 모시듯 하며,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시키지 말라. 이렇게 하면 나라에서도 원망이 없고 집안에서도 원망하는 이가 없을 것이다.’

또한 자공이 평생토록 지켜야 할 도리를 묻자, 바로 ‘용서하는 마음가짐 恕’이라는 한마디.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

158 내가 일어서고 싶으면 남도 먼저 일어서게 하라.

159 자신을 주인이 아니라 손님의 입장에 두는 것. 저는 이러한 삶을 ‘객관적인 인생관’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자기를 주인의 자리에 두고 반면에 다른 사람과 사회를 손님의 자리에 둔 채 오로지 자시의 본능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신이 주장하는 바대로 만사를 끝냅니다.

160 그 무엇이든 간에 자신을 위해 사회를 경영하려고 하는 것이지요. 저는 이것에 이름을 붙여 ‘주관적 인생관’이라고 부릅니다.

공자 왈, ‘본래 仁이란 내가 일어서고 싶다면 남을 먼저 일어서게 해주고, 내가 이루고 싶다면 남을 먼저 이루게 하는 것이다. 내 입장을 비추어 남의 입장을 알아줄 수 있음이 바로 인을 실천하는 방책’이라고 하겠다.

  1. 모든 길은 仁義道德으로 통한다.

공자 왈, ‘말이 충성스럽고 믿음을 다하며 행동이 도탑고 경건하면 비록 오랑캐의 나라에서도 뜻을 이룬다. 말이 충성스럽지 못하고 신뢰가 없으며 행동이 돈후하지 않고 경건하지 않다면 비록 고향인들 뜻을 이룰 수 있겠는가.’

162 저 자신은 40 년간 늘 인의도덕과 생산을 통한 이익추구는 일치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그것이 일치하도록 노력하고 실천해 왔습니다.

163 ‘인의도덕은 생산이익과 반드시 일치해야만 하는 것’ 또는 ‘일치하지 않으면 진정한 부를 이룰 수 없다는 것’, 게다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영원한 부를 얻지 못한다고 항상 생각합니다. 인의도덕과 생산이익의 일치, 즉 논어와 주판의 통일은 저의 부동의 신념입니다.

166 종교 역시 형식주의에 빠져… 우선 미신이 팽배한 작금의 풍토를 고쳐야만 합니다.

167 맹자는 謀利와 인의도덕은 마땅히 일치한다고 생각... 맹자 이후 유학자들은 이 둘을 완전 분리… 그 결과 ‘인의를 실천하는 사람은 부귀와 인연이 없고 부귀를 노리는 사람에게는 인의가 필요 없다’는 미신 팽배.

171 공자는 괴상한 일, 무력을 사용하는 일, 덕을 어지럽히는 일, 알 수 없는 귀신에 대한 일, 이 네 가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子不語怪力亂神.

173 상인의 원점은 논어주의.

175 그것은 바로 제가 늘 주장해온 인의도덕입니다.

177 자신의 품격을 높여라.

178 군자는 도의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

180 공자, 君子喩於善 小人喩於利.

183 한 사람의 진정한 가치를 평가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공명과 부귀의 성패를 두 번재로 치고 우선은 그 사람이 사회를 위해 실천한 공헌이 있나 없나를 반드시 먼저 관찰해 보는 것과 더불어 그 사람의 정신은 후대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를 고찰해 보아야 합니다. 이래야만 그 사람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매길 수 있습니다.

오해받기 쉬운 호연지기

‘元氣’란 무엇일까요?

맹자의 호연지기… 청년의 기백만이 아니다, 남녀노소 모두 필요한 삶의 기운입니다.

184 맹자, 浩然之氣 其爲氣也 至大至剛 以直養 而無害 則塞于天地之間

185 맹자의 지대지강 이직양이라는 호연지기는 지극히 크고 몹시도 강하기에 ‘곧게’ 길러야만 마땅… 곧게 길러야만 한다는 것.

논어에서 호연지기를 찾자면 弘毅(홍의)가 아닐까 합니다.

‘선비라면 반드시 넓고 꿋꿋해야 하니 맡은 바 일이 무겁고 갈 길이 멀도다. 인으로 자기의 임무를 삼으니 무겁지 않겠는가. 죽은 후에야 그만두니 갈 길이 멀지 않겠는가.

187 정이천(정이, 1033 – 1107 북송 유학자. 형 정호와 함께 주돈이에게서 배웠고 형과 아울러 二程子라 불리며 주자학 창시) 왈, ‘철학자는 생각을 성의껏, 지사는 행동을 엄격하게 한다.’

실제 메이지 시대의 선배들은 ‘철학자처럼 생각을 성의껏 성실하게 했다. 또 다이쇼 大正 1912 – 1926 시대 청년들은 ’지사처럼 행동을 엄격하게 했습니다.‘

196 도리를 어긋난 부귀는 뜬구름과 같다.

197 공자 왈, ‘훌륭하도다 안회여. 한 그릇의 밥과 한 바가지의 물로 빈민가에 살게 되면 보통 사람들은 그 근심을 감당하지 못하는데, 회는 그렇게 살면서도 그 가운데서 즐거움을 느끼고 자신의 즐거움을 바꾸지 않는구나.’ 그 말의 이면에 도리를 어긋난 부귀는 나에게 뜬구름과 같다는…

201 경쟁 사회에서도 따뜻한 유대를 잃지 말라.

210 자장이 인에 대해 여쭙자 공자 왈, ‘다섯 가지를 실천할 수 있다면 그것이 인이다. 고손함, 너그러움, 진실함, 민첩함, 은혜로움이다. 공손하면 업신여김을 받지 않고, 너그러우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며, 진실하면 믿음을 얻고, 민첩하면 공을 세우고, 은혜로우면 다른 사람을 부릴 수 있다.

213 사회의 행복과 일치하는 부를 쌓아야.

217 윤리 없는 부자는 반드시 망한다.

218 무사도와 상도

219 틀림없이, 봉건시대에 무사도와 재산을 늘리고 이익을 추구하는 도를 어긋나게 보는 관점은 후세의 유학자들이 인과 부를 함께 좇을 수 없다고 본 관념과 같습니다. 모두 다 착각일 뿐입니다.

도리로 얻는 부귀가 아니면 그것을 추구하거나 그것에 안주하지 않는 정신… 이러한 기개는 ‘무사는 만약 도리로 얻는 게 아니라면 털끝만큼이라도 탐내지 않은’ 기개와 같습니다.

228 ‘이익문제’라는 네 글자로 환원되는 충심의 사람들.

229 세상 사람은 흔히 그렇게 해서 성공한 사람들을 존중하고 부러워합니다.

생업도덕의 진정한 고갱이는 국가 더 나아가 세계에 직접적으로 공헌하는 것입니다.

230 부와 仁, 모순관계인가?

‘부귀는 어짊과 멀다’ 맹자.

‘장사는 모두 악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위 두 말의 참뜻은 받아들여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232 생산노동과 이익추구는 仁義道德과는 거리가 먼 사람(상인, 수공업자, 농민)들의 본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장사는 모두 악이다 라고 말했던 옛날 시대와 같은 그릇된 관념에 젖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에도시대 3백 년의 기풍이었습니다. 에도시대 초기에는 시대의 요구에 그런대로 부응하여 활기에 찼지만 쇄국정책을 펼친 후로부터는 지식은 점차 박후되고 활력은 쇠퇴하고 형식은 번잡해져 사무라이정신은 퇴폐해지고 상인은 날이 갈수록 비굴해져 결국엔 서로가 서로를 속이는 허위가 판을 치는 국면에 접어든 것입니다.

233 꼭 필요한 교육은 무엇인가.

234 孝. 부모님은 오직 자식의 질병만을 근심하신다.

236 강제적 효도는 ‘반항’, ‘불효자’ 만듦.

237 지식은 많으나 품성은 없는 현대 교육의 득실.

242 위인과 어머니

243 우수한 인재를 기른 현명한 어머니의 교육에 대한 예는 매우 많습니다.

245 저는 그 어떤 방면에서든지 여성과 남성은 똑같이 중시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256 실패의 성공학

259 신문잡지같은 정신사업에 종사하는 이들… 영혼을 배반하지 않으면서 혼신의 노력을 다 한 정신사업의 실패는 결코 실패이지 않습니다.

259 진인사대천명

260 사람은 전력을 다해 노력하면 되는 것이지, 아둔하고 멍청하게 기왕에 억지스런 일이거나 불합리한 일을 반드시 관철시켜야만 한다고 고집을 피울 필요는 절대 없습니다.

恭敬信의 마음으로 하늘을 대하는 게 최고지요.

논어와 주판 요약 끝.

참고하여,

그의 출생지 관련 글

http://bit.ly/1uHVqW4

관련 학술서

http://bit.ly/1t9Gz3N

기사
이광우의 일본 재발견
http://bit.ly/1p57mBS
강연기록
내가 實業界에 투신하게 된 것은 국력을 충실하게 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農工商, 특히 상공업을 융성시키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본을 모아 각종 회사조직의 창설에 힘을 쏟은 것이다. 그런데 회사를 잘 경영함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요소는 회사를 움직이는 인재이다. 인재를 얻을 수 없다면 그 회사는 결국 실패하고 만다. 그래서 나는 이 은행이나 여러 회사의 경영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실제의 운영을 담당하는 사람에게 사업상에서만이 아니라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도 지키고 행해야 할 규범․규준이 없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생각했을 때에 일상에서의 마음가짐을 구체적으로 설한 논어는 그 규범에 딱 맞는 책으로, 어떻게 판단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될 때에는 논어의 잣대를 참조한다면 절대로 틀리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 (시부사와기념관 홈페이지에서 인용)
출처: 

Written by 박승용

2014년 11월 21일 at 6:1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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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초 자동차 벤츠1886파텐트모토바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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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박승용

2014년 11월 15일 at 8:5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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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R GUN : MP5A5 R.A.S 합동과학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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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001 사진 002 사진 003 사진 004 사진 005 사진 006사진 007몇 번 사용치 않아서 거의 새 것과 다름 없다. 구성품은 총, 탄창, 멜빵, 육각렌치이다. 비비탄알과 조준경은 따로 구입해야 한다. 에어펌프식으로 작동하여 발상 성능이 우수하므로 주의하여야 한다.

검색창에 MP5A5 R.A.S 라고 치면 이 제품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을 읽을 수 있다.

Written by 박승용

2014년 11월 9일 at 10:5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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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센서스(Consen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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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에서 임진왜란 전 1591년의 선조실록 일부이다.

『통신사(通信使) 황윤길(黃允吉) 등이 일본에서 돌아왔는데 왜사(倭使) 평조신(平調信) 등과 함께 왔다.

당초 윤길 등이 지난 해 4월 바다를 건너 대마도에 도착하였는데, 일본은 당연히 영접사를 파견해서 사신 일행을 인도하여야 하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에 김성일(金誠一)은 그들의 거만함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의논하고 1개월을 지체한 뒤에야 출발하였다. 일기도(一岐島)와 박다주(博多州)·장문주(長門州)·낭고야(郞古耶)를 거쳐 계빈주(界濱州)에 당도했을 때에야 도왜(導倭)의 영접을 받았다. 왜인은 일부러 길을 돌아 몇 달을 지체하고서야 국도(國都)에 도착하였다.

사신 일행이 대마도에 있을 때 도주(島主) 평의지(平義智)가 국본사(國本寺)에서 사신들에게 연회를 베풀고자 하였는데, 국본사는 산 위에 있었다. 사신들이 먼저 가 있는데 의지가 가마를 탄 채 문을 들어와 뜰 아래에까지 와서 내리자 성일이 그의 무례함에 노하여 즉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니, 허성(許筬) 이하도 따라서 일어났으나 윤길은 그대로 앉아서 잔치에 임하였다. 성일이 병을 핑계로 나오지 않자 다음날 의지가 그 까닭을 듣고서 미리 알리지 않았다고 하여 시중을 든 왜인의 머리를 베어가지고 와서 사죄하였다. 이런 일이 있은 이후로 왜인들이 성일을 경탄(敬憚)하여 보이기만 하면 말에서 내려 더욱 더 깍듯이 예를 지켜 대접하였다.

그들의 국도 대판성(大阪城)에 도착해서는 큰 절에 숙소를 정하였는데, 마침 평수길(平秀吉)이 산동(山東)으로 출병하였다가 몇달 만에 돌아온데다 또 궁실(宮室)을 수리한다는 핑계로 즉시 국서(國書)를 받지 않아 5개월을 지체한 뒤에야 명을 전하였다.

그들 나라에서는 천황(天皇)이 제일 높아 수길 이하가 모두 신하로 섬기지만, 국사는 모두 관백(關白)이 통괄하였고 천황은 형식적인 지위만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깍듯한 예절로 받들고 의장(儀章)도 특별하여 부처를 받들 듯이 하였다. 관백이라고 한 것은 곽광전(霍光傳)에 ‘모든 일을 먼저 보고받는다[凡事階先關白]’고 한 말에서 인용한 것이다. 때문에 수길를 대장군이라 부르고 왕(王)이라 부르지 못하는데,【후일 대군(大君)이라 칭하였다.】 이는 본래 천황을 국왕전(國王殿)이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신을 접대함에 있어서 가마를 타고 궁문을 들어가도록 허락하고 가각(笳角)650) 을 울려 선도하였으며 당(堂) 위에 올라가 예를 행하도록 하였다.

수길의 용모는 왜소하고 못생겼으며 얼굴은 검고 주름져 원숭이 형상이었다. 눈은 쑥 들어갔으나 동자가 빛나 사람을 쏘아보았는데, 사모(紗帽)와 흑포(黑袍) 차림으로 방석을 포개어 앉고 신하 몇 명이 배열해 모시었다. 사신이 좌석으로 나아가니, 연회의 도구는 배설하지 않고 앞에다 탁자 하나를 놓고 그 위에 떡 한 접시를 놓았으며 옹기사발로 술을 치는데 술도 탁주였다. 세 순배를 돌리고 끝내었는데 수작(酬酢)하고 읍배(揖拜)하는 예는 없었다. 얼마 후 수길이 안으로 들어갔는데 자리에 있는 자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후 편복(便服)차림으로 어린 아기를 안고 나와서 당상(堂上)에서 서성거리더니 밖으로 나가 우리 나라의 악공을 불러서 여러 음악을 성대하게 연주하도록 하여 듣는데, 어린 아이가 옷에다 오줌을 누었다. 수길이 웃으면서 시자(侍者)를 부르니 왜녀(倭女) 한 명이 대답하며 나와 그 아이를 받았고 수길은 다른 옷으로 갈아 입는데, 모두 태연자약하여 방약무인한 행동이었으며, 사신 일행이 사례하고 나온 뒤에는 다시 만나지 못하였다.

상사(上使)와 부사(副使)에게 각기 은 4백 냥을 주고 서장관 이하는 차등을 두어 주었다. 사신이 돌아가게 해줄 것을 재촉하자 수길은 답서(答書)를 즉시 재결하지 않고 먼저 가도록 요구하였다. 이에 성일(誠一)이 ‘우리는 사신으로서 국서를 받들고 왔는데 만일 답서가 없다면 이는 왕명을 천하게 버린 것과 마찬가지이다.’ 하고, 물러나오려 하지 않자 윤길(允吉) 등이 붙들려 있게 될까 두려워하여서 마침내 나와 계빈(界濱)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비로소 답서가 왔다. 그런데 말투가 거칠고 거만해서 우리 측에서 바라는 내용이 아니었다. 성일은 그 답서를 받지 않고 여러 차례 고치도록 요구한 뒤에야 받았다. 지나오는 길목의 여러 왜진(倭陣)에서 왜장(倭將)들이 주는 물건들을 성일만은 물리치고 받지 않았다.

부산으로 돌아와 정박하자 윤길은 그간의 실정과 형세를 치계(馳啓)하면서 ‘필시 병화(兵禍)가 있을 것이다.’고 하였다. 복명(復命)한 뒤에 상이 인견(引見)하고 하문하니, 윤길은, 전일의 치계 내용과 같은 의견을 아뢰었고, 성일은 아뢰기를,

“그러한 정상은 발견하지 못하였는데 윤길이 장황하게 아뢰어 인심이 동요되게 하니 사의에 매우 어긋납니다.”

하였다. 상이 하문하기를,

“수길이 어떻게 생겼던가?”

하니, 윤길은 아뢰기를,

“눈빛이 반짝반짝하여 담과 지략이 있는 사람인 듯하였습니다.”

하고, 성일은 아뢰기를,

“그의 눈은 쥐와 같으니 족히 두려워할 위인이 못됩니다.”

하였는데, 이는 성일이, 일본에 갔을 때 윤길 등이 겁에 질려 체모를 잃은 것에 분개하여 말마다 이렇게 서로 다르게 한 것이었다. 당시 조헌(趙憲)이 화의(和議)를 극력 공격하면서 왜적이 기필코 나올 것이라고 주장하였기 때문에 대체로 윤길의 말을 주장하는 이들에 대해서 모두가 ‘서인(西人)들이 세력을 잃었기 때문에 인심을 요란시키는 것이다.’고 하면서 구별하여 배척하였으므로 조정에서 감히 말을 하지 못하였다.

유성룡이 성일에게 말하기를,

“그대가 황의 말과 고의로 다르게 말하는데, 만일 병화가 있게 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시오?”

하니, 성일이 말하기를,

“나도 어찌 왜적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하겠습니까. 다만 온 나라가 놀라고 의혹될까 두려워 그것을 풀어주려 그런 것입니다.”

하였다.』

 

다음은 이철희 베리타스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의 칼럼, ‘표준화에 있어서의 “컨센서스”’전문(全文)이다.

『한국인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합의에 도달하는 것에 서투른 것 같다. 의견이 다른 것이야 어찌보면 당연하고 오히려 바람직한 것인데, 입장 차이를 줄이고 원만히 합의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좀처럼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때로는 그들에게는 ‘합의’라는 DNA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합의를 잘 못하는 사람들을 국제표준화 회의에 참여하라고 연수를 보내면 어떨까. 표준화 회의에 참여하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합의 과정을 직접 경험해 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표준화라는 것이 무엇인가. 다양한 방식을 하나로 통합하여 다양함에서 오는 번거로움과 불편함을 없애고자 함이 아닌가. 다양한 의견(기술)들이 하나의 표준으로 통합되어가는 과정에서 원만하고 적절한 의견수렴 방식은 필수적이다. ISO, ITU, IEEE-SA 등의 국제표준화기구들은 하나같이 서구 선진국들의 철학과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러한 기구들에는 합의에 이르는 과정에 소위 ‘컨센서스(Consensus)’ 원칙이 강하게 작용한다. 컨센서스의 정확한 의미를 알기 위해 사전을 찾아보니, Merriam Webster 사전은 ‘the judgment arrived at by most of those concerned’로, Collins Cobuild 사전은 ‘general agreement among a group of people’라고 정의한다. ‘대부분의 관계자들이 도달한 결론’ 내지는 ‘그룹 내에서의 일반적 합의’ 정도로 대략 이해된다. 필자더러 정의하라면 ‘치열한 수면 위아래의 논의와 싸움 끝에 표준 참가자 대부분이 인정하는 대세로서의 결론’라고 설명하고 싶다.

국제표준화기구(ISO)는 컨센서스에 대해 ‘The views of all interests are taken into account: manufacturer, vendors and users, consumer groups, testing laboratories, governments, engaging professions and research organizations.’ 라고 정의했다. 다양한 관련자 모두의 이해관계가 고려된다는 의미이다. 실무적으로는 특히 표준화 프로세스 6단계 중 3단계인 ‘Committee Stage’에서 컨센서스를 강조한다. 워킹그룹의 작업의 결과로 Committee Draft를 작성하는 이 단계에서 표준참여자들 간에 컨센서스에 도달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논의를 하고 필요시 투표도 하는 것이다.

IEEE-SA에서의 컨센서스란 ‘Agreement among the majority’를 의미한다고 한다. ‘다수자들 간의 합의’로서 ‘과반수’를 강조하여 ‘전체 이해관계자들의 관점’으로 표현하는 ISO와는 다소 다른 뉘앙스가 풍긴다. 다시 말해 다수 내지는 유력 참여자를 우선시하는 느낌이 든다. 절차상 IEEE-SA는 투표(Balloting) 과정에서 컨센서스를 특히 강조한다. IEEE Rules에 따르면, Balloting Group 중 75% 이상이 참가하고 참가자 중 75% 이상이 찬성하는 경우 컨센서스에 이른 것으로 보고 있다.

어떤 경우든 참여자 다수의 의견이 최종적으로 반영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다수의 횡포를 방지하고 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다수자에게 의무를 부과하는 장치도 마련되어 있다. 예를 들어 Ballot 그룹 멤버가 제시하는 어떠한 Ballot comment라도 이를 무시해서는 안되고 모두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다수가 찬성하는 표준안이 소수 의견에 의하여 수정되는 일도 흔하다. 결국 표준 자체의 골격은 다수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지만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소수의 의견도 반영이 되는 소위 윈-윈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다수가 원하는 표준을 만들 수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소수자도 소외시키지 않는 것이 가능해진다.

표준화 회의에서 만장일치라는 것은 도달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해서 수적으로 다수가 이기는 다수결 원칙을 단순히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표결에서 진 소수는 안티세력이 될 수가 있다. 결국 찬성과 만족을 극대화하고 반대와 불만을 최소화하는 것이 관건인데, 이를 위하여 국제표준화기구들은 ‘컨센서스’라는 거대한 원칙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두 개의 대립하는 안이 있다고 할 때, 합의가 잘 안되면(컨센서스에 도달하지 못하면) 될 때까지 논의하고, 그래도 안되면 양자가 조금씩 양보하여 두 대안을 섞어서 융합형 또는 하이브리드형 표준을 만들고, 이렇게도 합의가 안되면 양자를 모두 인정하여 복수표준을 제정하는 것도 불사하는 것이 바로 컨센서스 정신이다. 다수라는 이유로 소수를 억압하고 자기들만의 의지를 관철하는 무자비한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최선은 아니지만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 방법인 것이다.

컨센서스를 단순히 의사결정을 위한 기법으로만 보면 안 된다. 어찌 보면 우리보다 훨씬 오래된 민주주의의 운영 경험에서 나온 서구인들의 노하우가 녹아들어 있는 원칙이다. 부러질지언정 휘지는 않는다는 식으로 최선만을 고집하다가 합의는 커녕 밥통을 통째로 깨버리는 우를 법 먹듯이 범하는 우리네 정치와 사회현실을 보면, 경직된(또는 불가능한) 최선을 버리고 과감하게 차선을 선택하여 다수가 만족하는 ‘컨센서스’ 정신은 표준화 단체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 TTA Journal Vol.134 03/04 2011』

 

제사상의 진설의 의미, 조율시

『우리 제사상 첫째 줄에는 조(棗, 대추), 율(栗, 밤), 시(柹, 감)를 놓는다. 대추는 벌레 먹지 않고 면역성이 강해 자손을 끊지 말라는 자식의 의미가 강하고, 밤은 새싹이 돋아도 밤톨 원형을 그대로 간직해 원형보존의 의미가 강하고, 감은 씨를 잘 심어도 감이 나오지 않고 삼 년이 지나 접붙여야 감이 나와 접붙이는 고통을 통한 완성의 의미가 강하다. 특히 감은 홍시가 없으면 곶감이라도 올려놓아 접붙여 완성하는 고통의 정신을 모두 음미한다.』

1

결론

위 세 가지 글, 선조실록, 이철희칼럼 그리고 제사상의 조율시의 의미를 읽어보면서, 컨센서스의 부재(不在)가 작게는 가족이라는 조직에서 크게는 국가라는 조직에 엄청난 재앙을 불러옴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컨센서스의 정확하고 다양한 사전적(辭典的) 의미와 더불어서 이러한 민주적 행동 체계가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제사상의 진설(陳設)에 베어있음을 앎으로써 우리 민족의 지혜와 그 염원이 얼마나 유구하고 통절(痛切)하였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Written by 박승용

2014년 11월 7일 at 12:03 오후

생각들에 게시됨

경제 붕괴가 오고 있다는 것을 대부분 미국인들은 알고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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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붕괴가 오고 있다는 것을 대부분 미국인들은 알고나 있을까?

- 미셸 스나이더, 2014년 11월 2일

미국이 무시무시한 경제 붕괴 직전에 서있다는 생각은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는 정말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미국 경제는 몇 년동안 비교적 안정적이었고 주식 시장은 새롭게 고점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금요일에 다우 지수와 S&P 500 지수는 모두 상승으로 마감했다. S&P는 9 퍼센트, 나스닥은 11 퍼센트 올랐다. 그리고 미국 소비자들은 이번 크리스마스 시즌에 6천억 원 넘게 소비할 것이다. 스웨덴 전체 경제 규모보다 큰 액수이다. 이러하니 세계 어디에서 경제 붕괴를 말할 사람이 있을까? 많은 이들이 2008년에 문제점들이 있었으나 그 이후 많이 정상화되었다고 인정하고 있다. 우리 주변이 매우 안정적인 이 때에 왜 경제 붕괴를 걱정해야 할까?

우리가 잘 지내온 이 짧은 안정기는 환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2008년도 금융 위기를 가져왔던 중요한 문제점들은 현재까지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장기적인 경제 문제들은 더 악화되어 왔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주의를 집중하는 시간이 너무 짧다. 모든 게 인스턴트인 이 시대에, 뉴스의 사이클이 고작 48시간이니 2008년은 아마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쯤 될 것이다.

현재 미국의 모든 경제 시스템은 부채 위에 있다.

부채 없이 움직이는 경제는 거의 없을 것이다. 집을 사는 데 모기지론이 필요하고 차를 사는 데에 오토론이 필요하고 휴가철 쇼핑하는 데에 신용 카드가 필요하다.

이 모든 부채는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은행이다.

특히 ‘대마불사 은행들’이 바로 부채 위주 시스템의 중심인 것이다.

이들 ‘대마불사’ 조직들 중 한 곳으로부터 모기지론이나 오토론이나 신용 카드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이 기사를 읽은 이들 중 매우 많은 이들이 그럴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런 소리를 듣기 싫겠지만 이들 은행들 없이 경제가 있을 수도 없다.

리먼 브라더스가 무너졌던 2008년에 우리 모든 시스템도 대부분 붕괴됐었다. 주식 시장이 붕괴됐을 때 우리는 바로 신용 경색을 경험해야 했다.

그런데 그런 경험은 이제 닥칠 위험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뉴욕타임즈의 칼럼니스트인 폴 크루그먼 정도의 소수 뛰어난 전문가들이 ‘대마불사’의 문제가 종료되었다고 했으나, 진실은 그 때보다 더 큰 위기가 오고 있다는 것이다.

5년 전과 비교하면 대형 은행 4개 사가 거의 40 퍼센트 성장했다. 로스엔젤레스 타임즈 최근 기사에 따르면,

‘금융 위기 발발 직전, 웰스 파고의 자산은 6천9십억 원이었고 현재 그의 자산은 1조4천억 원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자산은 1조7천억 원에서 2조1천억 원으로 커졌다. 그리고 제이피모건 체이스의 자산은 1조8천억 원에서 2조4천억 원으로 커졌다.’
이들 은행의 자산이 커지면서 동시에 1천4백 개의 군소 은행들은 은행계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

이는 이들 대형 은행들에 대한 의존이 더욱 깊어져왔음을 의미한다.

현 시점에서 다섯 개의 대형 은행들이 미국에서 일어나는 대출의 42 퍼센트를 차지하며 재무 시스템의 67 퍼센트를 여섯 개의 대형 은행들이 차지하고 있다.

만약 누군가가 이들 은행을 날려 버린다면 우리 경제도 하룻밤새 완전히 날라 갈 것이다.

그래서 이 몇 개 아니지만 굉장히 파워풀한 은행들의 건전성이야말로 우리 경제에 정말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은행들이 심각하게도 도박에 중독되어있는 것이다.

중독으로 생명이 파괴된 사람들이 흔들리지 않았던 적이 있던가?

바로 이들 은행들이 그러하다. 그들은 월스트리트를 거대한 카지노로 바꿔놓았다. 거의 늘 그들의 도박은 성공했고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그러나 2008년에서 봤듯이 그들이 오판하는 경우에는 급속히 무너진다.

걱정하는 도박이 바로 파생상품이다. 본질적으로 그들은 미래에 일어날 것인가 안 일어날 것인가에 도박을 건다. 대형 은행들은 이 도박에 있어 이기는 쪽에 설 수 있는 정교한 알고리즘을 이용하지만 이 알고리즘이 완벽하지는 못하다. 알고리즘이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에 전제를 기초로 하고 이 전제들은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 사람들은 실제로 똑똑하지만 사람은 사람인 것이다.

모든 일이 과거 5년처럼 정상적으로 운영된다면 이 알고리즘도 잘 작동된다.

하지만 만약 주요 주식 시장의 붕괴나 유럽, 아시아 은행들의 파산, 이자율의 큰 변동, 에볼라, 큰 자연 재해나 태양에 의한 EMP 폭발 등과 같은 ‘블랙 스완 사태’가 일어나면 모든 것이 갑자기 균형을 잃어 버리게 된다.

곡예사인 닉은 안전 그물도 없이 높고 긴 구간을 건넌다. 우리의 ‘대마불사’ 은행들이 바로 이렇게 매일매일을 건너고 있는 것이다. 지나오는 해마다 이들 은행들은 더욱 무모해졌지만 지금까지 심각한 결과는 없었다.

그렇지만 반드시 언젠가는 터질 것이다.

마권업자가 2십만 달러를 도박에 걸고 1만 달러 밖에 없다면 어떤가?

바보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 대형 은행들이 하고 있는 짓이다.

현재 제이피모간 체이스는 67조 원 이상을 파생상품에 투자했으나 그의 자산은 2조5천억 원일 뿐이다.

현재 시타은행은 60조 원 가까이 파생상품에 투자했으나 그의 자산은 1조9천억 원일 뿐이다.

현재 골드만삭스는 54조 원 이상을 파생상품에 투자했으나 그의 자산은 1조 원도 되질 않는다.

현재 뱅크오브아메리카는 54조 원을 파생상품에 투자했으나 그의 자산은 2조2천억 원일 뿐이다.

현재 모간스탠리는 44조 원 이상을 파생상품에 투자했으나 그의 자산은 1조 원도 되질 않는다.

대부분 사람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취약한 우리 금융 시스템의 현실을 모르고 있다.

이들 ‘대마불사’ 은행들은 언제든지 파산할 수 있음이 진실이다.

그들이 파산하는 날 우리 경제도 파산할 것이다.

그저 이 거짓으로 가려진 짧은 기간의 안정이 앞으로도 오래기를 기도하는 수 밖에 없다.

이 기간이 끝나게 되면 그야말로 거대한 혼란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번역 원문 :
http://theeconomiccollapseblog.com/archives/most-people-cannot-even-imagine-that-an-economic-collapse-is-coming

Written by 박승용

2014년 11월 3일 at 10:12 오후

비즈니스, 생각들에 게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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