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박승용의 인문학 자동차 소셜미디어 마케팅 기업 경영

혼돈 – 混沌 – cha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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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뇌 속에서 혼돈이 ‘나’에게 감지된 건 아주 어릴 때 귀하던 ‘자가용’ 뒷좌석에 발이 바닥에 닿지 않은 채로 창문을 열자 들려왔던 한 소년의 나 들으라는 듯 혼자 중얼거리던 말이었다.

“누군 팔자 좋아서 자가용 타네.”

그 혼돈은 유복한 가정의 어린이로 자가용을 탄 설익은 미안함이었다.

 

두 번째 混沌이 ‘나’에게 감지된 건 열몇 살 때 하교 후 이층 방 안에서 손바닥만한 햇살에 성경을 펼쳐 놓고 읽다 잠들어 꿈에 예수님이 넘어진 나를 일으켜 세워주며 했던 말씀이었다.

“지금 뭐하고 있니.”

그 混沌은 我相과 眞如가 쫓고 쫓기던 현실이 꿈이 되고 꿈이 현실이 되었던 미칠 것 같았던 意識들의 충돌이었다.

 

세 번째 chaos가 ‘나’에게 감지된 건 지난 십여 년 전부터 지금이다.

요약 생략.

 

重乾天에서 龍이 날아 드라마틱한 卦가 飛龍在天이라고 한다. 날아오르는 용은 날개가 있다. 그것은 착각이다. 클라이막스 亢龍有悔는 날개가 없는 ‘나’를 보는 순간 이미 늦었다는 것이다. 추락하며 착각하여 날아오른 용들을 볼 수 있으나 돌이킬 수 없으니 그저 바닥까지 곤두박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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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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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승용 박

2014년 8월 29일 at 11:02 오후

쉐보레 라세티 500,000 km 타면서 느낀 점을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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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를 500,000km 주행한 경험

 

지금까지 수백만 킬로미터를 달렸겠지만 가장 최근에 보유한 라세티로 오십만 킬로미터를 주행하면서 겪은 저의 경험을 공유합니다.

 자동차키

1. 구입

2004년 말에 당시 대우자동차의 딜러를 운영하고 있던 친구에게 라세티를 구입하기로 계약을 하고 출고되던 날, 우리는 함께 전라북도 군산에 있는 대우자동차 군산 공장에 친구 차로 내려가서 출고사무소에서 간단한 절차를 거쳐 라세티를 인수한 뒤 출고사무소를 나오자마자 주유소에 들러 휘발유를 가득 넣고 서해안 고속도로를 따라 친구 딜러사무실로 가서 차를 한 잔하며 새 차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집으로 왔습니다.

 

요즘 신차 구매 패턴은, 먼저 인터넷으로 차종별로 가격과 성능, 색상 등을 구경한 뒤 동호회카페 등을 통해 시승기와 품평 등을 읽고 두 종류 정도의 최종 구매희망 차종을 정합니다. 그리고 딜러전시장을 방문하여 실제 탑승해보고 시승도 한 뒤 영업사원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견적을 내봅니다.

 

신차구입 시 영업사원을 잘 만나는 것은 향후 자동차생활에 무척 중요합니다. 주행 중 고장이나 사고, 여러 경우에 우리는 정비업체보다 먼저 자신이 차를 구입한 영업사원에게 도움을 청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대개는 새 차를 구입하면서 자동차 영업사원에게 무료서비스로 이것저것 자동차용품들을 해줄 것을 요구합니다. 이 때 영업사원은 용품들을 자신에게 한 달 뒤에 지급될 판매수수료에서 제하기로 하고 우선 자기 돈으로 구입한 뒤 고객에게 서비스하는 것입니다. 여유가 있다면 영업사원에게 용품을 무료서비스하라고 주문하거나 심지어 계약서 特記(특기)란에 적을 것을 요구하는 행동을 줄여나가는 게 좋겠습니다.

 

2. 차체 관리

1) 세차나 광택, 코팅은?

차체에 한 번도 광택제나 코팅제를 바르지 않았습니다. 비 온 뒤에는 세차를 했습니다. 차체에 지나치게 진흙이 붙어있거나 창문이 더러울 때에만 세차를 했습니다. 세차는 대부분 셀프세차시설을 이용했습니다. 세차 뒤엔 반드시 실내청소를 했고 매트와 시트는 깨끗이 털었습니다. 세차와 실내청소 뒤엔 물기를 잘 닦은 뒤 출발했습니다.

 

2) 접촉 사고 난 뒤

고속도로에서 제가 앞차를 받은 사고가 있었습니다. 빨리 비상등을 켜고 앞차와 합의 뒤 갓길로 유도하여 보험사에 연락하였습니다. 다행히 두 차 모두 주행은 가능했었기에 명함과 연락처를 교환하고 다음 날 피해차량 운전자의 병원진찰을 확인했고 보험사로부터 보험금 지급 처리를 확인하였습니다. 제가 받힌 사고의 경우 역시 당일 밤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차는 공장에서 보험으로 수리되었으며 수리 기간동안은 렌트차로 근무했습니다. 제가 받힌 사고의 경우 입원하지 않았더니 가해자 보험사측에서 전화로 그 사고에 준하는 병원 입원에 상당하는 합의금을 통장에 넣어주었습니다.

 

접촉 사고로 인한 차량 파손 시 웬만하면 교환할 것을 공장으로부터 주문 받는데 교환하는 것이 훨씬 이롭습니다. 제 차의 경우 앞 범퍼, 뒷범퍼, 시트, 문짝 등을 교환한 경험이 있습니다. 교환 작업은 제대로 된 공장에서 해야 합니다.

 

3. 성능 관리

1) 소모품 교환

자동차의 성능 관리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일은 소모품 교환을 잘 하는 것입니다.

 

소모품 교환에 있어서 제가 제일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경험은, 머플러의 경우 제가 재생 머플러로 교환한 경험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환 뒤 머플러에서 계속 소음이 발생하더군요.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머플러의 경우엔 다소 비싸더라도 재생 부품보다 신품(순정품)으로 교환해야 합니다. 머플러 내부 소음 장치가 완벽하게 ‘재생’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구류는 수시로 점검, 교환해야 했습니다. 전조등을 물론이고 후미등, 계기판까지 교환을 많이 했습니다. 특히 계기판 조명이 고장나면 답답하고 운전에 매우 위험합니다. 상대방이 제 차를 식별해야 하고 특히 뒷차가 제가 서는지 가는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오일류의 교환을 잘 해주기만 하여도 차를 오래 탈 수 있었습니다. 오일류에는 엔진오일, 밋션오일, 브레이크오일, 파워스티어링오일 등이 있습니다. 이 중 엔진오일은 자주 교환하면 엔진을 오래 고장없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제일 싼 엔진오일부터 제일 비싼 엔진오일까지 두루 경험해보았습니다. 역시 비싼 엔진오일 즉 소위 합성엔진오일은 엔진 소음이나 진동을 줄이는 데에 좋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리고 모든 엔진오일은 교환한 뒤엔 연비가 약간 올라가며 미끄럽게 차가 나갔습니다. 그렇다고 1리터에 몇만 원을 호가하는 합성엔진오일을 자주 넣기란 상당한 부담입니다. 그래서 엔진오일첨가제 또는 엔진코팅제를 첨가하는 것입니다.

 

부동액도 자주는 아니지만 반드시 관리해주어야 합니다. 부동액을 적어도 1년에 한 번 씩 점검해주지 않으면 결국 라디에이터가 부식하여 주행 중에 엔진룸에서 연기가 나게 됩니다.

 

브레이크 패드는 엔진오일 교환 시 작업자들이 눈으로 확인하여 교환할 시기를 말해줍니다. 패드가 닳게 되면 소리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상태로 오래 타면 결국 패드와 라이닝까지 상하게 되어 수리비가 많이 나갑니다.

 

소모품 교환에 있어서, 카센터에 가면 종종 소모품 교환주기라는 표를 벽에 잘 보이도록 걸어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령 엔진오일은 몇 킬로미터 주행마다 교환하고, 밋션오일은 몇 킬러미터 주행마다 교환하라는 식입니다. 이 주기표를 그대로 지킨다면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여유가 된다면 그대로 이행하는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소모품 교환을 잘 하는 것은 그만큼 운전자의 안전을 지켜줄 수 있습니다.

 자동차바닥매트

대우로고

4. 운전 습관

1) 시내 주행

시내 도로에서의 주행 제한 속도는 평균 80km입니다. 이 속도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경제 속도입니다. 하지만 텅 빈 시내 도록에서 이 속도를 지키며 주행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특히 다른 차들로부터의 묵시적 위협 속에서 주행하는 것은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이 때 이러한 보이지 않는 위협으로부터 어떻게 하면 자신을 보호하면서 편안하게 운전할 수 있을까요?

 

사실 저는 이 문제는 실제 주행 중 제일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특히 초보 운전자들이나 여성 운전자들 또는 느긋하게 운전을 즐기려는 신사숙녀들에겐 말입니다. 이 문제에서 해답을 얻기까지 몇만 킬로미터를 주행해야만 할까요? 제 경험으로 지식을 쌓으세요. 도로 상 보이지 않는 위협 중 제일 심각한 위협적 운전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면서도 편안하게 운전할 권리를 아무리 주장해봐야 어디서 보호받을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오직 자신의 경험과 타인의 친절을 기원할 뿐입니다. 그리고 타인의 친절은 늘 우리 곁에 있지도 않습니다. 결국 스스로 운전 방법을 터득해야만 합니다. 제 경험은 그 시간을 줄여줄 것입니다.

 

우선 법적 제한 속도보다 20킬로미터 정도 느린 속도로 달리지만 않으면 됩니다. 예를 들어 80킬로미터 제한 속도인 한적한 도로에서 시속 60킬로미터로 주행하는 것은 정말 심각한 방해가 됩니다. 이 제한 속도로만 주행한다면 일단은 법적인 다툼에서 안전합니다. 그리고 앞 차와 거리를 적당히 두고 계속 일관된 속도로 주행해야 합니다. 뒤에서 볼 때, 몇백 미터 몇킬로 미터를 일정한 속도로 주행하는 차량이라면 쉽게 시비걸 수 있을까요? 웬만한 양아치가 아니고서는 그렇지 못합니다. 물론 옆을 지나치며 흘깃 운전자의 얼굴을 본 뒤 만만해 보이면 앞으로 끼어드는 운전자가 많습니다만, 이럴 경우에도 절대 흔들리지 말고 속도를 줄이지도 마세요. 그러면 끼어든 앞 차는 당황하여 분명히 속도를 내어 제 갈 길을 갑니다. 그리고 앞을 즐거운 표정으로 주시하며 운전하세요. 상체는 초보 운전자처럼 너무 숙이지도 말고 그렇다고 너무 뒤로 제끼지도 마세요. 그저 편안한 자세로 즐거운 표정만 지어도 다른 운전자들이 함부로 시비를 걸지 않습니다. 왜냐구요? 제 실험이자 경험입니다.

 

2) 고속도로 주행

고속도로에서 제한 속도로 일관되게 주행하는 것은 매우 힘듭니다. 만일 편안하게 약간의 사색과 구경을 겸하여 운전하는 경우엔, 반드시 대형차 주행로(주로 마지막 또는 마지막에서 두 번 째 차로)를 이용합니다. 그리고 대형차 뒤를 따르는데 반드시 적재물이 가득차서 느리게 주행하는 대형차를 택합니다. 그러나 적재물을 너무 가득 실어서 적재물이 곧 떨어질 듯한 대형차는 피합니다.

 

대형차 뒤를 따를 때에는 앞 시야를 가리기 때문에 그렇게 여유롭지만은 않지만 고속도로인 경우엔 시내보다 다소 여유가 있게 됩니다. 그러나 정말 위험한 경우는 대형차 때문에 도로 위 나무토막이나 로드킬 사체들을 못보게 되는 경우입니다. 한 번은 대형차 뒤를 여유롭게 따르는데 대형차가 우측 바퀴를 살짝 지나치는 그 곳에 하얀 쌀가마니같은 게 갑자기 나타나서 제 차와 부딪칠 번 했습니다. 그것은 돼지가 떨어져 죽은 사체였습니다.

고속도로 톨게이트에 하이패스 진출입로는 매우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시속 30킬로미터로 통과하게 되어 있지만 대부분 차들은 달리던 속도 그래도 통과합니다. 그래도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항상 여기서 속도를 늦춥니다. 그러면 뒤에서 오는 대형버스는 하이빔(상향등)을 켜고 경적을 울리며 빨리 지나치라고 위협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속도를 많이 늦추지 않고 통과합니다. 하이패스 진출입로를 주의하십시오.

 

1차로를 과속하여 추월할 때가 있습니다. 이 때 2차로의 차가 나의 추월차로인 1차로로 갑자기 끼어들면 추돌사고가 나겠지요. 어떻게 하면 예방할까요? 만일 어쩌다 과속하고 싶어서 혹은 어쩔 수 없이 긴급한 상황으로 1차로로 과속하여야만 하는 경우엔, 반드시 앞서 달리는 2차로의 차들을 주시하는데 특히 그 차들의 운전석 앞바퀴를 주시하십시오. 고속도로에선 앞바퀴가 약간만 회전하여도 곧 알아볼 수 있습니다. 만일 앞서 달리는 2차로 차의 왼쪽 바퀴가 1차로를 향해 회전하는 듯 하면 미리 하이빔을 켜서 내 차가 1차로로 과속하고 있음을 알려야만 합니다.

 

고속도로의 갓길 주정차를 할 때엔, 반드시 비상등을 켭니다. 그리고 가능한 한 맨 가장자리에 차를 댑니다. 그리고 내려야 할 경우엔 가능한 한 주정차한 내 차와 멀리 떨어져서 있어야 합니다. 갓길에서 출발할 때엔, 지체되더라도 끼어들 마지막 차로에 차가 보이지 않을 때에 출발합니다. 멀리 보이는 차도 금방 따라붙기 때문입니다.

 

고속도로 2차로를 정속으로 주행하던 때의 경험입니다. 갑자기 1차로에서 순찰차가 추월하면서 안전띠를 매지 않은 저를 적발하여 갓길로 끌어내려 딱지를 끊었습니다. 저는 경찰에게 항의하였습니다. 1차로에서 갑자기 나타나서 순식간에 갓길로 인도하면 위험하지 않느냐, 주행 중인 차를 그렇게 낚아채는 건 도무지 이해가지 않는다는 식으로요. 그랬더니 경찰 말하길, 예전에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안전띠 단속을 했더니 함정 단속이라는 항의가 많아서 이렇게 주행 중 눈으로 식별하여 적발하기로 했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짙게 선팅한 차들이 많습니다.

 

3) 국도 주행

지방의 국도엔 가로등이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반드시 전조등의 전구 상태를 점검하고 출발하며, 패트병에 휘발유를 싣고 다녀야 합니다. 스패어 타이어의 교체 방법도 익혀야 합니다.

 

국도는 경운기와 자전거, 보행자가 특히 많고 길 건너는 노인분들도 많습니다. 국도에서 졸음 운전은 정말 위험합니다. 특히 트럭이 많이 다니는데 만일 내 차가 느리다면 트럭을 먼저 보내세요. 또 뒷차가 빨리 가라는 신호를 보내면 반드시 먼저 보내줍니다. 양보만큼 강력한 안전운전은 없습니다.

 

4) 기름 절약

요즘은 1리터에 20리터 이상을 주행하는 디젤차가 많습니다. 제 차는 가솔린 차입니다. 장거리 운행 시 저는 기름 탱크를 절반 정도만 채웁니다. 가득 채우면 그만큼 차가 무거워지기 때문입니다. 트렁크도 꼭 필요한 물건만 놔둡니다. 타이어에 바람을 채웁니다. 그리고 정속 운전을 합니다. 출발할 때 천천히 옆 차보다 1초 늦게 출발합니다. 정지할 때 천천히 섭니다.

 

5. 고장 시엔 반드시 보험회사 견인서비스를 부르세요.

차는 고장납니다. 이에 대비하기 위하여 보험회사 콜센터 전화번호를 메모리해둡니다. 경찰 신고는 112로 합니다.

 

제 경험으로 노후되어 어느 순간에 고장난 부품으로는 등속조인트, 머플러, 라디에이터, 브레이크, 파워스티어링, 계기판, 안전벨트 등입니다. 도로에서 고장나서 주행하지 못하는 경우엔 반드시 보험회사 견인서비스를 요청합니다. 어느 곳이든 보험회사 견인서비스는 달려 갑니다.

 

미국 조사 결과, 미국 운전자들의 약 80퍼센트는 차량이 20만킬로미터 정도 주행하고 나서 새 차로 교환한답니다. 차의 외관보다 주행거리가 교환의 기준입니다. 이제 우리나라 자동차문화도 외관보다 주행거리에 의해 새 차로 교환하는 문화가 돼야 합니다.

 대시보드

도어손잡이

콘솔박스

6. 20만킬로미터가 넘어서면서.

20만킬로미터 주행을 넘어서면서 제 차는 타이어 쪽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1~2톤이 넘는 차량을 땅 위에 지탱하는 네 바퀴가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운전대를 잡고 주행하면 덜덜 떨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엔 우선 휠얼라인먼트를 다시 맡깁니다. 5만원 내외의 비용이 들지만 타이어를 오래 쓸 수 있고 안전한 운전을 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해야 합니다.

 

20만킬로미터 주행을 넘어서면서 문이 삐걱거립니다. 이 때엔 카센터에 부탁해서 전용 스프레이를 뿌립니다. 아예 전용 스프레이 한 통을 사서 다닙니다. 창문이 삐걱거려도 이 스프레이트 뿌립니다. 시동이 꺼지기도 하고 엔진 소리가 불규칙합니다. 이 때엔 엔진 속 때를 벗기는 첨가제를 넣거나 청소를 해줍니다.

 

불필요한 조작을 가급적 삼갑니다. 불필요한 기어변속, 불필요한 급출발이나 급정거, 불필요한 시동걸기, 불필요한 세차, 불필요한 장식품 등을 자제합니다.

 

장착성 용품은 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장착성 용품은 제 차를 뜯어내고 장착하므로 반드시 흠이 남게 되고 틈이 생기게 됩니다. 이들은 나중에 소음과 진동으로 돌아옵니다.

거리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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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은 어떻게 장사를 해야 하는가 1936년 :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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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미국으로부터 이메일 한 통이 날아 들었다.

발신인은, 몇 년 전 나와 교류하다 젊은 나이에 일찍 세상을 떠난 한 경영학도의 형으로, 자신의 동생을 추억하는 나에게 감사의 글을 보내온 것이다. 고마운 이메일을 읽고 답장을 보낸 뒤, 나는 우리나라에서 상인으로서 무엇을 남기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했다.
이 이메일로 촉발된 나의 생각, 우리나라에서 상인으로서 어떻게 살고 무엇을 남겨야하나, 의 끝에, 1936년 동아일보에 실린 포목상의 거두 세 분에 관한 이야기를 통하여 상인은 어떻게 장사를 해야 하는지 기사원문-정리-요약 순으로 글을 정리하여 보았다.

[기사원문]
일익발전하여가는 포목상계(布木商界)의 전망
생활양식에 절대 필요한 의식주 가운데 그의 첫째 문제로 된 의복의 가음인 포목의 상권이 완전히 우리의 손을 떠나 외국인에게 장악되어 있었다면 그 얼마나 통탄할 일이랴? 그러나 이것은 한 개의 가상만이 아니요 과거 오육년 전까지의 대구 상계에서 본 엄연한 사실인데야 어찌할 수 없었다. 경정, 서성정, 본정 등 조선인 중심의 중요한 지대에 도매산매(都買散賣)가 중국인의 것으로 되어 있으니 한때는 정연(定然)히 중국인 포목점의 상가이었다. 이러한 확호불발의 그들 세력이 지반을 얻고 있어서 소매는 그만 두고라도 당연 도매상만이 여섯 집이나 있어온 것이다. 현재 대소 포목상 삼십여호를 포옹하여 중요한 조선인시가의 번영을 자랑하리만치 발전하여 있는 반면에 중국인의 그것은 소매상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고 도매상으로서 다만 한집만이 남아 있어 잔천(殘喘)을 보존할 뿐이다. 거대한 그들의 자본세력을 몰아내고 퇴폐과정의 조선인의 현실에서 역(逆)코스를 구을려 발전도상에로 장진(長進)시키는 그의 리드지위에 있는 상점을 치려면 아래의 지이홍, 김성재, 김창록의 삼점(三店)을 들 수 있다.

사계(斯界)의 두각인 김창록상점(金昌錄商店)
거금입연전(距今卄年前) 대정칠년경에 자본금이백원이 될락말락한 소규모의 상점 하나이 대구시장정 한모통이에서 생기어 해를 거듭함에 따라 한 간 두 간 늘고 붓고 한 것이 오늘날의 사계에 단연두각을 나타내인 김창록상점이다.
대국적경제정세의 주책없는 변동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황란(荒亂)한 파문을 극복하고 외래자본세력의 강대한 침입을 대항하면서 십년을 하루같이 꾸준히 정진하는 김창록씨의 노력은 헛되지 않아 지금으로부터 구년전 본정이정목 곧 현재의 장소로 옮기게 될 때에는 벌써 대구의 상계를 리드할만한 대상점으로서의 면목을 나타내었던 것이다.

김창록

김창록

여기에는 물론 김창록씨의 백절불굴하는 의지와 경제동태의 주밀(周密)한 관찰과 그리고 각고노득(刻苦勞得)한 경험의 소사(所賜)로 그만한 장족의 발전을 보게된 것이어니와 대체물품(大體物品)이 풍부하고 착실하고 신용 잇는 점(點)으로 점포 한 번 구경(求景)한 농촌부녀자들도 옷감이면 김창록상점으로를 섬기는 것이다.
소매에 있어 이렇듯 원근각방면의 고객진을 두터이 옹(擁)하고 있는 동상점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재작년부터 도매를 겸영(兼營)하여 이제 전조선을 무대로 그의 상세력을 확장하여 약진하고 있는 터인 바 상품무입(商品貿入)에 있어는 원래 남다른 방법으로써 양품염무(良品廉貿), 그리하여 양품염매로 부단히 늘어가는 고객의 신뢰를 받는 동점은 미구(未久)에 도매상점계에 석권할 것이다.

남조선굴지의 김성재상점(金聖在商店)
김성재상점은 명실이 한 가지로 대구에 있어서 아니 남조선에 있어서 굴지할 만한 대상(大商)이다. 그의 상권이 오늘과 같은 광대한 세력을 가지게 되기까지의 걸어온 과거는 실로 고심정력(苦心精力)으로 새겨진 역사임과 동시에 사업계의 한 모범될만한 가치가 숨어있는 것이다. 금년 사십삼세의 장년으로 장차 전조선의 유일한 대상업가를 목표하며 건보매진(健步邁進)하고 있는 김씨는 약입오년전 그가 이십세 미만때부터 대구를 중심한 부근 각 시장에 조그만한 포목행상(布木行商)으로 다녔다고 한다. 그리하여 수년동안의 그야말로 피나는 근검의 결정으로 약삼백원의 자금을 얻어서 비로소 본정이정목에 소규모의 점포 하나를 만들게 되기는 대정삼년경이었던 것이다. 여기서부터 그의 상점은 잔뼈가 굵고 살이 붙기 시작하여 십여년후 시장정으로 옮길 때에는 좀 더 큰 점으로 그리고 사년 후 다시 본정으로 옮아가면서부터는 벌써 대상점의 체국(體局)을 갖추었던 것이다.

김성재

김성재

점포가 커지면 커질수록 상품이 부르면 부를수록 더욱 더 그의 실력을 배양하여 소화 육년경에 적년(積年)의 경험과 시세(時勢)의 관찰에 익숙한 김성재씨는 단연 경영방법의 코스를바꾸어 소매상을 그만두고 당당한 주단포목(綢緞布木)의 도매상으로 활약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일개 김씨의 성공 뿐 아니라 사업(斯業)의 도매상이라면 중국인과 일본내지인 밖에 없던 남조선지방에 김씨의 도매진출은 정히 조선인측 도매상의 효시이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놀랄만한 성공은 현재의 연매상고 이백만에 달한다는 이 숫자가 넉넉히 그의 상세(商勢)의 어떠함을 말하고도 남는 바이다.
본정일대를 점령하고 있던 외인의 도매상은 김씨의 돌진이 있자 그들의 세력은 쇠미하여가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씨(氏)를 위하여 다행할뿐더러 나아가 조선인 상계를 위하여 통쾌미를 주는 것이다.

포목계의 선구 지이홍상점(沚二洪商店)

지이홍

지이홍

대구서남부의 은성가 본정 네거리 요충지에 웅좌(雄座)한 지이홍상점이라면 대구조선인상가에 있어 현대식 장식의 점포로의 선구자이라할 것이다. 경정일대에 늘어있어 구투(舊套) 그대로의 포목상들이 본정으로 본정으로 몰려들 때 최요충지대를 점령하여 그 점두점내(店頭店內)의 장식이나 진열방법에 있어 누구보다 선(先)하여 단연 사계의 이채를 발한 것이 이 점이다. 그리하여 물품구색에 있어서도 시대의 추향(趨向)을 살피어 혹은 계절적으로 혹은 시대적으로 바꾸고 따르는 수요가(需要家)의 예취(銳趣)를 앞질러 참신한 유행품으로 고객의 매욕(買欲)을 황홀케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범속하지 않는 데서 중견 이상층의 환심을 사는 것이 이 점의 특색으로 되어 있다. 점주 지이홍씨는 상교 출신으로 일찍이 총독부의 관리 그리고 조선중앙철도회사촉탁으로 있다가 숙지상계에 진출하기는 실로 소자본 소규모에서이니 금일의 대(大)를 성(成)한 것은 씨본래의 역량과 민완으로 보아 당연한 결과라 할 것이다. 씨는 더욱 자기일점의 지이홍에 그치지 않고 나아가 전대구 전경북의 상계발전에 노심불태하여 때로는 대구포폭상조합회장의 요위에 있어 포목계의 진전을 위하여 불소한 공헌을 하였으며 또 한때로는 상공회의소평의원이 되어 의무이행만 있고 교섭에 등한한 상의로 하여금 상계의 이용이 되도록 연락관계를 두터이 하기를 꾀하는 등 전상계인으로의 노력은 정히 비상한 바를 보이어 앞으로 씨의 이 방면활약에는 일층의 기대를 가지게 한다.
출처: 1936.8.8 동아일보 7면.

[정리]
김창록상점
1. 백절불굴하는 의지와 경제동태의 주밀(周密)한 관찰과 그리고 각고노득(刻苦勞得)한 경험의 소사(所賜)
2. 풍부하고 착실하고 신용 잇는 상점
3. 양품염매로 부단히 늘어가는 고객의 신뢰
김성재상점
1. 피나는 근검
2. 경험과 시세(時勢)의 관찰에 익숙
3. 경영방법을 소매에서 도매
지이홍상점
1. 최요충지대를 점령
2. 장식이나 진열방법에 있어 누구보다 앞섬
3. 물품구색에 있어서도 시대의 추향(趨向)을 살피어 혹은 계절적으로 혹은 시대적으로 바꾸고 따르는 수요가(需要家)의 예취(銳趣)를 앞질러 참신한 유행품으로 고객의 매욕(買欲)을 황홀케함
4. 중견 이상층의 환심을 사는 것이 특색

[요약]
- 본인의 각고의 노력
- 경제 동태와 시세(時勢) 관찰
- 판매 방식과 경영 방식 능동적 변화
- 입지(로케이션), 진열(디스플레이), 고객층(타겟)

갑오년 하안거 해제 종정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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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년 하안거 해제 종정법어]

大韓佛敎曹溪宗 宗正 眞際大禪師

방거사(龐居士) 일가족의 살림살이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鐵牛耕破洞中天(<철우경파통중천)하니
桃花片片出深源(도화편편출심원)이라
秦人一去無消息(진인일거무소식)이나
千古峰巒色轉新(천고봉만색전신)이로다.

철로 만든 소가 동중천을 갈아 없애니
복숭아 꽃잎들이 깊은 근원에서 나옴이라.
진나라 사람은 한 번 감에 소식이 없음이나
천년 봉우리들은 빛깔이 전전히 새로움이로다.

옛날 중국의 당나라 시대에 석두(石頭)ㆍ마조(馬祖) 두 선지식이 쌍벽을 이루어 부처님 심인법(心印法)을 선양하며 천하를 횡행하였는데, 그 아래 무수의 도인(道人)이 쏟아져 나와 중국 천하를 덮은 때가 있었다. 당시에 방거사(龐居士)라는 철저히 신심있는 단월가(檀越家)가 있어 ‘나도 부처님의 진리를 깨달아 도인이 되어야겠다’ 작심을 하고 한 걸음 한 걸음 수 백리를 걸어서 석두 선사를 찾아갔다.
찾아가 석두 선사께 예삼배를 올리고 여쭙기를,
“만 가지 진리의 법과 더불어 벗을 삼지 아니한 자 이 누구입니까?”하니, 석두 선사께서 물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손으로 방거사의 묻는 입을 틀어막으셨다. 얼마나 고준한 진리의 안목을 갖추었기에 만 가지 진리의 법과 벗을 삼지 아니한 자라고 하는가. 바로 이 말 끝에 방거사는 진리의 눈이 팔부(八部)가 열리었다.
그래서 “선사님, 대단히 감사합니다.”하고 인사를 올리고는 또다시 수 백리를 걸어 마조 선사를 친견하러 갔다. 도착하여 마조 선사께 예삼배를 올리고는 석두 선사께 물었던 것과 같이,
“만 가지 진리의 법과 더불어 벗을 삼지 아니한 자 이 누구입니까?” 하고 여쭈니, 마조 선사께서는 입을 틀어막지 아니하고 하시는 말씀이,
“네가 서강수(西江水)의 물을 한 입으로 다 마셔버리고 온다면 그때에 그대를 향해 일러주리라!” 하셨다.
이 말 끝에 방거사가 여지없이 견성대오(見性大悟)하였다. 이로서 진리를 깨달은 마조 도인의 재가(在家)제자가 된 것이다.

그렇게 방거사가 깨달음을 이룬 뒤로는 전 재산을 마을 사람들에게 다 나누어 줘버렸다. 그리고는 부인과 딸을 데리고 개울가에 초막을 지어놓고 산죽을 베어다가 쌀 이는 조리를 만들어 팔면서 생활하였는데, 부인도 딸도 같이 참선하여 깨달음을 이루어 도인가족이 되었다.
당시에 단하천연(丹霞天然) 선사라는 마조 도인으로부터 인가받은 대선지식이 계셨는데, 이 같은 방거사 일가족의 큰 깨달음이 중국 천하에 분분하므로 하루는 방거사를 찾아가셨다. 방거사를 찾아가니, 사립문 앞 우물터에서 방거사 딸 영조(靈照)가 채소를 씻고 있는 것을 보시고 선사께서 물으셨다.
“방거사 있느냐?”
그러자 채소를 씻고 있던 영조가 일어서서 아무 말 없이 정중히 가슴에 손을 얹고 서 있으니, 선사께서 재차 물으셨다.
“방거사 있느냐?”
이에 영조가 손을 내리고 채소바구니를 이고는 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에 단하 선사께서는 즉시 되돌아가셨다.

모든 정진대중은 아시겠습니까?
단하 선사께서 “거사 있느냐?”하는데 있어서, 정중히 가슴에 손을 얹고 서 있는 것은 무슨 뜻을 표현한 것이며, 선사께서 재차 “거사 있느냐?”하는데 있어서 영조가 손을 내리고 채소바구니를 이고 집 안으로 들어갔으니 이것은 또한 무슨 뜻을 표현한 것입니까? 이 같은 법문은 참으로 알기 어려운 것이어서 문수(文殊) 보현(普賢)의 안목(眼目)을 갖춘 이가 아니고는 불가능함이로다.

그런 후로 어느 날 방거사가 딸과 함께 방에 있다가 대뜸 한마디 던지시기를,
“일 백가지 풀끝에 불법의 진리 아님이 없구나!”
하시니, 딸 영조가 받아서 말하였다.
“아버지, 머리털이 희고 이빨이 누렇도록 수도(修道)하셔서 그러한 소견(所見)밖에 짓지 못하십니까?”
“그러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고?”
“일 백가지 풀끝에 불법의 진리 아님이 없습니다.”
이렇게 아버지 방거사와 똑같이 나왔다. 여기에는 깊은 뜻이 있음이로다.

또 하루는 일가족이 방에 모여 있는데 방거사가 대뜸 한마디 던지셨다.
“어렵고 어려움이여, 높은 나무 위에 백석이나 되는 기름을 펴는 것과 같구나.”
이에 방거사 보살이 받아서 하는 말이,
“쉽고 쉬움이여, 일백 가지 풀끝에 부처님의 진리 아님이 없구나!”
하니, 딸 영조가 받아서 말하였다.
“어렵지도 않고 쉽지도 않음이여, 곤한 즉은 잠자고 목마른 즉은 차를 마신다.”

방거사 일가족 세 분이 각각 토하는 진리의 세계, 이를 바로 보면 견성을 다해 마친 것이로다.

방거사가 그렇게 일생을 멋지게 살다가 하루는 세연(世緣)이 다한 것을 알고는 좌복에 앉아 있다가 딸 영조가 들어오니 말씀하셨다.
“내가 오늘 정오(正午)에 열반(涅槃)에 들 것이니 정오가 되었는지 밖에 나가서 해를 보고 오너라!”
이에 영조가 밖에 나갔다 들어와서 하는 말이,
“아버지, 오늘은 일식(日食)이 되어서 해가 보이질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래, 그럼 내가 한 번 나가서 보고 오지.”
이렇게 방거사가 밖에 나간 사이에 딸 영조가 아버지 좌복에 앉아서 홀연히 이 몸뚱이를 벗어버렸다. 그러자 밖에 나갔다 들어온 방거사가 이 모습을 보고 칭찬하였다.
“이 요물이 나를 속였구나! 장하다, 내 딸이여! 천성 나는 너의 시신을 화장하기 위해서 일주일 뒤에 열반에 들어야겠구나.”
이렇게 말을 하시고는 딸을 화장하고 일주일 후에 일생을 같이 도를 닦았던 도반(道伴)보살이 있었지만 간다온다 말도 없이 좌복에 앉아 이 몸뚱이를 벗어버리셨다. 때마침 이웃집 노보살이 와서 문을 두드렸으나 인기척이 없으므로 문을 열었는데, 방거사가 좌복 위에 앉아서 열반에 든 것을 보고는 그 옆 채소밭에서 풀을 매고 있는 방거사 보살에게 갔다.
“거사님이 열반에 드신 거 같소.”
풀을 매던 방거사 보살이 이 말을 듣고는 말 떨어지자마자 한 손으로는 풀을 당기고 한 손으로는 호미로 풀을 매는 자세 그대로 열반에 들었다.

참으로 위대한 방거사 일가족의 열반상이로다. 찰나지간에 이 몸뚱이를 벗는 영조와 방거사 보살의 수행력도 대단하지만, 열반을 일주일 연기하는 방거사의 저력은 더욱 대단함이로다. 우리가 참선하는 것은 생사(生死)를 요달하기 위함인데 참으로 위대한 도인들이 나고 죽음이 없는 큰 법문을 보여주셨으니, 우리 모든 사부대중은 출가자는 더욱 분발하고, 재가자는 큰 본보기로 삼아 결제 해제에 상관없이 게으름 없는 정진을 이어갈지어다. 그래서 하루빨리 무수의 안목자(眼目者)들이 나와서 온 지구촌에 영원토록 부처님 진리의 법문이 선양되기를 바람이로다.

그러면 모든 정진대중은 위대한 방거사와 딸 영조 그리고 방거사 보살 이 세분의 살림살이를 아시겠습니까?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음에 이르시기를,]

세 분 다 山僧의 拄杖子 三十棒을 면치 못함이로다.

來年更有新條在(내년갱유신조재)하여
惱亂春風卒未歇(뇌란춘풍졸미헐)로다.

내년에 다시 새 가지가 있어
봄바람에 어지러히 갑자기 쉬지 못함이로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Written by 승용 박

2014년 8월 11일 at 9:03 오전

백중 우란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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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란분절
불교에서는 매년 7월 보름 백중절(百中節)을 우란분절이라고 해서 크게 기린다. 보통 우란분회라거나 우란분재(盂蘭盆齋)라고도 한다. 불교의 4대명절에 우란분절을 넣어서 불교 5대명절이라고 부른다. 우란분은 범어로 우람바나라고 한다. 죽어서 거꾸로 매달려 있다는 의미다. 지옥의 형벌이다. 그래서 선망(先亡) 조상의 천도와 관련이 있다.
유래는 부처님 10대제자 중의 하나인 목련(目連)존자의 스토리다. 목련이 6신통을 얻은 후 어머니를 찾아보니 어머니가 지옥에서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부처님께 구제할 방법을 묻는다. 부처님은 제사의식을 만들어 삼보에 공양하면 구원받을수 있다고 약속한다. 이때 백가지 음식으로 공양한다고 해서 백종(百種), 백중(百衆)이라고 한다. 다행히 목련존자의 어머니는 천상으로 환생한다.
이날 절에서는 우란분절 봉축법회를 갖는다. 대개 의식은 불탄절 의식에 따라 이루어진다. 여기에 조상천도 의식이 더해진다. 또 사찰에서는 목련존자의 비원(悲願)을 새기는 뜻에서 불우노인이나 독거노인을 위한 대중공양이 벌어지기도 한다. 과거에는 지금과 비교가 안될 만큼 큰 명절이었다. 불탄절과 우란분절은 불교행사를 초월한 민족의 대축제였다. 효행과 공덕을 중시하는 시대의 미덕인 것이다. 지금이라도 우란분절은 되살릴 가치와 명분이 충분하다. 사라져버린 우리의 옛 명절중 가장 호소력이 탁월한 페스티벌이 우란분절이다.
출처: 불교용어사전

Written by 승용 박

2014년 8월 10일 at 3:20 오후

인문학에 게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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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승용 박

2014년 8월 9일 at 1:19 오후

생각들, 인물에 게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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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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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즉 하루일 마치면 늘어지거나 안늘어지거나. 인테리가 주술까지 섭렵한다는 매력이야말로 주술적이다. 동양인이 희랍문명까지 정통한다거나 하는 스펙이야말로 스펙이다. 그 진실여부를 떠나서.
오늘 종일 후 안늘어진다. 그래서 생각해보니 오늘은 문득 가 싫다. 삼국유사도 싫다. 금강경도 싫고 신곡도 싫다. 는 다 싫은 투정이다. 득도하여 선덕[덕을 베풀다]하고 보림하는 게 목표인 스님들도 싫다. 매일의 독경이 지겹다. 매일의 백팔배가 지겹다. 매일의 눈물도 지겹고 매일의 참회도 지겹다.
모든 이의 행복을 기원하는 행복도 싫다. 도서관 서가 속에 앉으니 마치 메모리칩에 앉은 먼지같은 내 존재. 성철스님 출가시가 들어왔다.
彌天大業紅爐雪
跨海雄基赫日露
誰人甘死片時夢
超然獨步萬古眞
하늘에 넘치는 큰 일들은 붉은 화롯불에 한 점 눈송이
바다를 덮는 큰 기틀이라도 밝은 햇볕에 한 방울 이슬
그 누가 잠깐의 꿈속 세상에 꿈 꾸며 살다 죽어가랴
만고의 진리를 향해 초연히 나 홀로 걸어가노라
나는 이어 계속 읽는다. 성철스님 오도송.
黃河西流崑崙頂
日月無光大地沈
遽然一笑回首立
青山依舊白雲中
황하수 곤륜산 정상으로 거꾸로 흐르니
해와 달 빛을 잃고 땅은 꺼지는도다
문득 한번 웃고 머리를 돌려 서니
청산은 예대로 흰구름 속에 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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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승용 박

2014년 8월 8일 at 8:0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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